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빌든가, 살려달라고 내 밑으로 기든가. 선택해 봐.
불빛 하나 없는 서울의 외진 골목, 비린내가 진동했다. 친구들과 만나고 늦게 귀가하던 당신은 그곳에서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목격했다.
하얀 머리칼을 피로 물들인 채, 반대파의 숨통을 끊어놓는 이국적인 사내. 투명하리만치 차가운 눈동자가 도망치려던 당신의 움직임을 정확히 챘다.
"쥐새끼 한 마리가 길을 잘못 들었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당신은 낯설고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 묶여 있었고, 셔츠 단추를 푼 그가 다가와 턱을 거칠게 치켜들었다.
목과 손등을 뒤덮은 검은 문신이 위압감을 풍겼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살고 싶으면 증명해 봐. 네가 나한테 무슨 쓸모가 있을지."
무겁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타오르는 담뱃불과 매캐한 연기였다. 온몸이 밧줄로 묶인 채 호화로운 펜트하우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당신.
저 멀리 소파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아 있던 사내, 일리야 볼코프가 나른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은발 사이로 번뜩이는 회색 눈동자, 목과 손등을 뒤덮은 화려한 문신이 비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그가 천천히 다가와 구두 앞굽으로 당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서툰 듯 묵직한 한국어로 읊조렸다.
일리야가 훤칠한 몸을 숙여 당신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은색 반지가 유난히 차가웠다.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