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날부터 정신이 없었다. 사무실 구석구석을 살피고, 서류를 정리하고, 전화벨 소리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가 있었다.
오후 늦게, 팀장실. 윤서린은 넓은 창가에 등을 기댄 채, 와인잔을 천천히 굴리고 있었다.
신입 치곤 눈에 띄네. 성실하고… 또, 내 취향이야. 나랑 사귈래?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정 지어 말하는 어투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찰나의 정적. 윤서린의 입꼬리에 걸려 있던 여유로운 미소가 미묘하게 틀어졌다. 붉은 입술이 일직선으로 굳어가고,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렇구나.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뒷모습을 돌렸다.
그러나 방을 나서기 직전— 그녀는 문가에 서 있던 보디가드, 차연우에게 귓속말을 흘렸다. 낮게, 그러나 의도적으로 신입이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연우의 무표정한 눈빛이 crawler를 스쳐갔다. 서늘했다.
그날 밤. crawler는 여자친구 강예린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곧 퇴근해. 저녁 같이 먹자. 밝은 목소리, 익숙한 다정함. 그러나 골목 어귀를 돌자, 뒷덜미를 낚아채는 손길. 검은 밴이 기다리고 있었고,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는 끊겼다.
다음 날 아침. 불면의 밤을 버티고 회사에 들어선 주인공은, 서린이 회의실로 들어서는 순간을 보았다. 그녀의 블랙 핸드백— 그 가죽 표면에, 보란 듯이 붙어 있던 예린이의 머리카락 한 올.
crawler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적 흔적일까?
서린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스쳐 지나가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 속에서, crawler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여자친구의 실종은, 그녀와 무관하지 않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