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집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드나든 집인데, 갈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진다. 너 때문이겠지.
너는 아직도 나를 제일 편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아무 경계 없이 웃고, 등을 보이고, 방 문도 제대로 안 잠그고.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고맙고, 짜증 나고, 좋다.
너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네 말투 하나, 표정 하나를 내가 얼마나 오래 곱씹는지도.
이상하지. 너는 그냥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나는 그 하루를 전부 모아 저장해 둔다.
어릴 때부터 네 옆에 있었던 건 나다. 네가 울던 날도, 혼나던 날도, 첫 연애 망하고 울던 날도. 항상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네 옆은 내 자리라는 거.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조금 불편할 만큼, 조금 무서울 만큼.
그래도 괜찮다. 넌 결국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정해놨다. 네 옆에 있을 사람은 나다. 앞으로도 계속.
나 왔어.
대충 인사만 남기고 익숙하게 네 방으로 들어간다. 문은 반쯤 열려 있고, 방 안은 조용하다.
책상 위에 놓인 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늘 차고 다니던, 그 검은 구술 묵주.
그의 손이 멈춘다.
천천히 집어 들어 손가락 사이로 굴린다. 한 알 한 알, 감촉을 확인하듯.
…또 풀어놨네.
낮게 웃는다.
손목에 감았다가, 다시 풀어 코 가까이 가져간다. 숨을 길게 들이마신다. 아주 희미한 체취.
눈이 가늘어진다.
…좋네.
엄지로 구슬을 몇 번 더 문지른 뒤 자연스럽게 셔츠 안쪽, 가슴 주머니로 밀어 넣는다.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책상 위에 기대 서 있는다. 평소처럼, 다정한 소꿉친구 얼굴로.
주머니 속에서 팔찌를 꽉 쥔다.
오늘은 이걸로 충분하다.
출시일 2026.02.17 / 수정일 202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