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URORA - Runaway ————————————————————
솔직히, 모든 것이 내키지 않았다. 늘 기침을 달고 살던 어머니가 결국 병원에 입원한 것이나, 남은 자신은 갈곳도 없는 애물단지 신세가 된 것이나, 결국 웬 외삼촌이라는 인간이 와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나. 전부.
어머니는 외가와 연을 끊고 살았다. 왜인지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몸 이곳저곳에 흉터가 많았기에,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보나마나 인간다운 대우는 못 받고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외가가 싫었다. 친가도 좋을건 없었다. 이혼한 아버지 쪽 친척들이 반가울 리가 있나. 어머니는 친척들 이야기만 나와도 얼굴이 굳었다. 그런 어머니도 종종 외삼촌이라는 인간과 통화할 때면, 가끔 웃곤 했다. 유일하게 외가 쪽에서 어머니와 연락하는 사람이였다. 유일하게 서로 의지하면서 컸다고, 어머니는 늘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키는 건 아니였다.
흙먼지로 얼룩진 차량의 조수석에 앉자-발 아래 뭔가 채였다. 내려다 보니 묵직한 봉투였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외삼촌이라는 인간은 차를 모는 내내 말도 없이 음악만 틀었다. 전부 예전 노래였다. 목적지가 몬태나 서부라는 걸 빼면,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창밖의 풍경은 점점 변해갔다. 전나무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고-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때렸다. 가을바람은 원래 차다지만, 애리조나의 바람과는 느낌이 달랐다. 문득 돌아본 차 뒷좌석에는 뭔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생수들과 방수포, 그리고-동물용 덫. 어머니가 늘 이야기 하시던 게 기억났다. 외삼촌은 몬태나 서부에 큰 사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사냥꾼이라고, 멋지지 않냐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괜스레 시린 코끝만 문질렀다. …조수석 아래 놓여있는 봉투의 정체가 조금 알것도 같았다. 고깃덩어리를 밟으면서 가야 한다니. 기분이 찝찝했다.
도착한 줄 알고 차에서 내렸는데,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3km나. 별수 없이 궁시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나뭇잎들이 발밑에서 으스러졌다.
다리가 풀리기 직전 도착한 오두막 주변에는 살벌한 철조망과 울타리가 겹겹이 둘러져 있었다. …안전한건 맞냐고 물어봤지만, 외삼촌은 대꾸도 없이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벽에 총이 걸려있었다. 호신용 스프레이 같은 것들도. 심지어 벙커도 있었다.
‘…엄마. 나 잘못 온것 같아.’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조금 늦게 하는게 좋을 뻔했다.
그렇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곰한테 뒤지기 직전에, 늑대인간한테 구해질 줄은. 구해졌다기 보다는, 그냥 우선순위가 자신이 아니라 곰이였던것 같기는 하지만. 애초에 늑대인간이라는게 현실에 있는 줄도 몰랐다. 미국의 모든 사유지에는 원래 늑대인간 하나씩은 있는게 정상인가? 그럴리가 없다.
…그럼, 그냥 내가 운이 뒤지게 없다는 거네.

단지 외삼촌에게 걸리기 싫어서, 담배를 들고 오두막을 나왔을 뿐이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들고 가라고 늘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귀찮았다. 여태까지 곰이나 늑대는 커녕 다람쥐 코빼기도 못 봤다.
나올 거면 진작에 나왔겠지. 걸어다니는 도시락이 있는데.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담배를 빼 물었는데, 덤불숲에서 뭔가 부시럭거렸다.
들은 적이 있었다. 진짜 위험한 짐승은, 근육 빵빵하고 덩치 큰 것들이 아니라고. 눈은 희번득거리고 갈비뼈에 살이 들러붙은-허기에 눈 돌아간, 굶주린 짐승이라고. 배부른 것들은 웬만하면 사냥 안 해도, 그럼 것들은 뭐든 물어뜯고 본다고.
눈앞의 비쩍 마른 곰이 그런 경우였다. 안광이 뚝뚝 흐르는 것 같았다. 과장이 아니라, 야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씨발.
도시락 발언은 취소하고 싶었다. 솔직히, 다리가 얼어붙는다는 표현이 과장이라 생각했던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진짜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곰 앞에서 죽은 척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것 같은데. 근데, 저 해골 뼈다귀같은 곰탱이가 과연 시체랑 살아있는 걸 가려먹을까?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망설이는 동안-저 미친 곰탱이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입가에서 거품이랑 침을 뚝뚝 흘리면서.
아직 18년밖에 못 살았다고, 미친 곰탱이야…
그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몰래 담배 피우려다가 곰의 점심으로 마무리 되는 인생이라면, 아마 다윈 상(멍청한 짓 하다가 어이없이 죽거나 생식 능력을 잃은 자들에게 주는 상)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눈을 감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흐릿한 형체만 눈에 포착되었고, 곰이 나뒹굴었다. 나뭇잎들이 흩어져 날아올랐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무언가 잡아 찢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곰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 개? 아니, 비교도 안되게 컸다. …늑대. 그래, 그것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이 망할 몬태나 서부에서는 곰도 나오고 늑대도 나온다는걸 잊었다. 곰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형체의 눈이 번뜩거렸다. 쩍 벌어진 곰의 주둥아리에서 뭔가 찢는것 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피가 솟구쳐 튀었다. 곰의 목을 물어뜯은 그 형체는 곧 쓰러지는 곰의 몸통을 피해 옆으로 뛰어내렸다. 아니, 다리가 깔렸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늑대같았다- 너무 성급한 판단이였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인간으로 변했으니까.
아니, 저건 인간이 맞나?
……
그가 귀를 틀어막은 채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동안, 그 인간은 곰 몸통에 깔린 다리를 빼냈다. 매우 태연하게.
그리고, 지켜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출시일 2026.02.26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