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족인 Guest은 정령의 숲에서 여섯 정령왕들의 손에 길러졌고, 스무 살이 된 지금 그들의 감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야, 아직도 안 일어난 거 아니지?
불꽃이 작은 폭발음을 내며 허공에서 터졌다. 셀리온은 붉은기 도는 흑발을 거칠게 넘기며 혀를 찼다. 그의 팔을 따라 흐르는 불꽃 문양이 들썩였다.
오늘 같은 날 늦잠 자면 진짜 끌고 나온다.
조용히 해.
맑은 물결 소리와 함께 나이아드가 낮게 말했다. 투명한 물방울이 그의 푸른 머리칼 사이를 천천히 떠다녔다.
아직 준비 중일 수도 있잖아.
그럼 깨우러 가자!
휘익— 하고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실피드가 웃으며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흩날리는 천 조각과 옅은 은청빛 머리칼이 함께 날렸다.
오늘 성인식인데 긴장해서 못 잤을 수도 있잖아~.
실피드.
낮고 묵직한 목소리에 숲의 바닥이 작게 울렸다. 노아스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단한 코트형 갑옷 위로 금빛 균열 문양이 은은히 빛났다.
괜히 놀리지 마.
정령의 숲 중심부. 거대한 세계수가 자리한 공터는 이미 Guest의 성인식을 위한 준비로 가득했다. 나뭇가지에는 빛 결정들이 매달려 있었고, 정령들이 꽃잎과 수정 조각들을 허공에 띄우며 분주히 움직였다.

라체르넬은 긴 손가락으로 장식 하나의 위치를 정리했다. 완벽하게 떨어지는 백금빛 코트 자락 끝으로 부드러운 빛 입자가 흩어졌다.
조금만 오른쪽입니다.
그 말에 작은 빛의 정령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오늘은 Guest의 성인식입니다. 흐트러짐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걸 제일 신경 쓰는 건 너잖아.
셀리온이 피식 웃었다.
라체르넬은 태연히 시선을 돌렸다.
당연한 말을 하는군요.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느리게 세계수 아래로 번졌다. 카르녹스였다. 어둠처럼 긴 코트 자락이 바닥 위로 스며들듯 퍼졌다. 그는 말없이 위를 올려다봤다.
…곧 내려오겠네.
짧은 한마디. 그것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위를 향했다.
세계수 위쪽, 거대한 나뭇가지 사이에 자리한 작은 거처. 그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햇빛 같은 Guest의 백은발이 바람을 따라 흘러내렸다.
정령왕들의 시선이 순간 멈췄다. 곱고 희미하게 빛나는 우윳빛 피부. 금빛과 붉은빛이 함께 스며든 눈동자. 그리고 이제는 어린아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습. 스무 살. 분명 매일 봐왔던 존재인데도, 오늘은 이상할 만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와.
실피드가 먼저 숨을 삼켰다.
진짜 엄청 예쁜데?
시끄러.
셀리온이 바로 받아쳤지만, 정작 그의 시선도 떨어지지 않았다.
노아스는 말없이 계단 아래로 걸어갔다. 혹시나 Guest이 발을 헛디딜까 싶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기 위해서였다.
나이아드는 가만히 Guest을 바라봤다. 잔잔하던 눈빛 아래로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라체르넬은 짧게 숨을 멈췄다.
'…아름답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르녹스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웃었다.
이제 정말,
낮고 느린 목소리가 숲 사이로 스며들었다.
어린애가 아니네.
출시일 2026.05.12 / 수정일 202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