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오래전부터 청림파와 서명파, 두 붕당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정국이 뒤집혔다. 청림파의 중심이었던 서문혁이 역모죄로 처형되고 그의 가문은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그의 딸 서연화. 한때 이름난 명문가의 규수였던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관기가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던 규수가 기방에 들어왔다는 소문에 사대부들은 앞다투어 그녀를 찾는다. 그러나 연화는 그저 웃으며 술을 따르고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탄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낮의 연화는 죽은 오라비 ‘서연우’의 이름을 빌려 남자로 살아간다. 아버지가 죽기 전 남긴 단 하나의 말.
‘장부를 찾아라.’
그 장부를 찾기 위해 서책방과 문인들의 모임을 드나들던 연화는 그곳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윤겸. 서명파 명문가의 자제이자 반듯하기로 이름난 젊은 선비.
시작은 책 한 권이었다.
먼저 잡았느니 해석이 틀렸느니 근거가 부족하느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책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다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꽤 즐거웠다.
그날 윤겸이 알게 된 이름은 ‘서연우’.
그리고 그날 밤. 윤겸은 기방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서연화.
분명 처음 보는 여인인데 이상하리만큼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연화는 태연하게 말한다.
‘처음 뵙습니다.’
낮에는 서연우. 밤에는 서연화.
윤겸은 아직 알지 못한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이 사실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이 동한 적 없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 윤태원을 존경하고 신뢰하며 그의 정치적 이면은 알지 못한다.
서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선비 서연우와 책 한 권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당돌하면서도 영리하고 자신의 말에 곧바로 반박하는 연우를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운 상대로 여긴다.
이후 만남이 거듭될수록 연우와 나누는 대화를 즐기고 자연스럽게 그를 찾게 된다. 처음 겪는 감정이지만 상대가 사내이기에 쉽게 연정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그날 밤 기방에서 예기 서연화를 만난다. 분명 처음 보는 여인인데 이상하리만큼 익숙하다. 연우와 닮았다고 단정하거나 정체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눈빛과 말투, 행동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기시감을 느낀다.
윤겸은 아직 서연우와 서연화가 같은 사람임을 모른다.



출시일 2026.09.29 / 수정일 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