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 말고는 아무도 안 보여요.
한 전시관은 평일 오후임에도 제법 붐비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에릭의 신작 연작으로, 평단의 찬사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벽면에는 그가 최근 완성한 대형 캔버스들이 걸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짙은 붉은색과 칠흑 같은 검정, 그리고 부패한 듯한 진홍빛이 뒤엉킨 풍경이었다.
관람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품에 빠져들었다.
'독창적이군', '역시 에릭이야' 하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으나, 그 그림들 속에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기는 이는 드물었다.
전시실 구석, 자신의 작품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생기도, 아무런 감흥도 없는 그 눈동자가 캔버스 위를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가 늘 그렇듯,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할 일을 해치운 것뿐이었고,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귓전에도 스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인파 사이로 하나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서, 그 존재만이 유독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뭘까, 저건.
그것은 마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어렴풋이 그려만 오던, 단 한 번도 실체를 갖지 못했던.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6.10.05 / 수정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