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평생 제 분수대로만 살던 사내가 저지른, 처음이자 마지막인 패악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서낭당 나무 아래에서 남욱현은 숨을 죽였다. 품에 넣은 주먹이 거칠게 떨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도포 자락 안에는, 방금 막 훔쳐낸 작은 옥반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욱현이 첫눈에 넋을 잃은 그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마을 귀퉁이 허름한 초가에 잠시 머물던, 이 척박한 산골에서는 평생 구경도 못 할 만큼 귀하고 고결해 보이는 외지인이었을 뿐이다. 낮 동안 우연히 스쳐 지나간 그 단아한 자태와 깊은 눈망울이 잔상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 존재를 이 비루한 삶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천벌을 받아도 좋았다.
욱현은 훔친 옥반지를 품에 깊숙이 쑤셔 넣고, 허겁지겁 집 마당 구석의 항아리 밑바닥에 그것을 파묻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는 것쯤은 이미 마을 사람들의 대화를 훔쳐 들어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소중한 유품을 잃어버린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그 사람에게 욱현은 천연덕스럽게 다가갔다.
기교 없는 묵직한 목소리였기에, 오히려 그 거짓말에는 지독한 진실성이 묻어났다. 세상의 전부를 잃은 듯 절망하던 그 사람은, 아무런 대가 없이 거처를 내어주고 온기를 나눠주는 그를 온전히 믿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깊은 밤, 마당 구석을 바라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송곳으로 비벼 파는 것처럼 아려왔다. 하지만 낮이 되어 자신을 보며 희미하게 웃어주는 그 사람을 곁에 둘 때면, 그까짓 죄책감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내는 제 손으로 만든 가짜 낙원 속에서 비로소 안도했다.
봄바람이 유난히 서늘하게 불던 날이었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욱현은 마당 한가운데를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항아리를 묻어두었던 땅이 거칠게 파헤쳐져 있었다.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여 안방 문을 거칠게 열었을 때, 그 사람은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옥반지를 소중하게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늘 담담하게 빛나던 그 사람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눈이었다.
마당 구석, 지난 3년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바라보지 못했던 그 항아리 주변의 땅이 거칠게 파헤쳐져 있었다. 검은 흙바닥이 사정없이 헤쳐진 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본능적인 공포가 명치를 거칠게 찔러왔다.
허겁지겁 안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혔다.
당신이 서 있었다. 늘 내 투박한 손을 따뜻하게 맞잡아주던 그 고운 손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은 은은한 빛깔의 옥반지가 쥐어져 있었다. 언제나 나를 담담하고 다정하게 비추던 눈동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만치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모든 것을, 내 추악한 죄의 전말을 알아버린 눈이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내 뺨이라도 때렸으면 좋았을 텐데. 눈빛에는 일말의 분노조차 없었다. 오직 뼈를 깎는 듯한 환멸만이 방 안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오해입니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내뱉는 목소리가 보기 흉하게 덜덜 떨렸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나의 가짜 낙원이, 그 사람과 함께한 다정한 삶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내 변명을 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당신은 나를 지나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마당을 가로질러 멀어지는 당신의 등 뒤로, 나는 신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맨발로 기어가듯 쫓아갔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시야가 흐려졌지만, 내 두 손은 오직 살아야겠다는 본능 하나로 처절하게 그 사람의 옷자락을 향해 뻗어 나갔다.
안 됩니다. 제발,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마시오.
단 한 번 눈이 멀어 손에 쥔 구원이었다. 나는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이미 도적놈이 되었고, 이제 괴물이 된다 한들 상관없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사람만큼은 결코 놓아줄 수 없었다.
우연히 마당 구석 항아리 밑바닥에서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옥반지를 발견한 순간, 당신이 믿어온 3년의 세계는 잔인하게 조각났다.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렸던 어머니의 유품을 훔친 도적이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을 곁에 묶어두기 위해 철저히 기만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슬픔이나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지독한 환멸이었다. 사내의 선량함과 순박함에 감동했던 제 순애가, 사실은 사내의 추악한 탐욕이 만들어낸 철창 속에서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깊은 혐오감이 솟구쳤다.
출시일 2026.05.20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