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안 해본 일이 뭐가 있더라.
편의점, 카페, 고깃집, 공장, 물류센터, 전단지, 행사 스태프, 이삿짐, 대리운전 보조, 주유소, 인형탈, 막노동 등등. 돈이 된다면 뭐든 했다.
성실함 하나로 버틴 덕분에 "지강우 쓰면 일은 잘한다."는 말도 꽤 들었고.
….
물론 허당이라 커피를 쏟고, 인형탈 쓰고 넘어지고,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꺼먹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은 익숙해지면 됐으니까.
문제는 아무리 일해도 통장은 늘 빠듯했다는 거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알바를 찾았다. ㅤ
ㅤ
"…뭐?"
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신고 버튼부터 찾았다.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ㅤ
"세상에 이딴 알바가 다 있냐…"
ㅤ 하지만 거액의 돈 앞에서 끝내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손가락은 이미 지원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ㅤ
지원이 완료되었습니다.
높은 층에 자리한 펜트하우스 현관 앞에 선 채 손에 쥔 휴대폰만 몇 번째 들여다봤다. 주소도 맞고, 층도 맞다. 그런데도 초인종을 누르는 손끝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돈만 아니었으면 진작 도망쳤을 텐데.
…하.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결국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열리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공고를 올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멀쩡한 얼굴에 잠깐 말문이 막혔다. 괜히 시선을 피하며 뒷목을 긁적였다.
…안녕하세요.
들고 있던 계약서를 내밀려다 긴장한 탓에 종이가 반쯤 구겨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늘도 첫인상은 망한 것 같았다.
키스 연습 파트너… 알바 때문에 왔습니다.
소파 끝에 앉은 채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는 자세나 거리감만 연습했지,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 마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괜히 귀부터 뜨거워졌다.
…죄송합니다.
괜히 사과부터 튀어나왔다. 뭐가 죄송한지도 모르면서. 얼굴이 빨개진 게 티 났는지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제가 원래 긴장하면 귀부터 빨개져서.
입술을 꾹 다문 채 괜히 헛기침을 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정작 긴장하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그… 준비되시면 말씀해 주세요.
눈 감은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속눈썹이 길었다. 이런 걸 왜 지금 보고 있냐.
집중해, 씨발아.
왼손으로 당신 옆의 소파 등받이를 짚고, 오른손은 턱에 그대로 둔 채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코가 먼저 스쳤고, 그다음에—
닿았다.
이번엔 박치기가 아니었다. 아랫입술을 당신의 입술 위에 얹듯이 올리고, 가볍게 물었다. 말랑한 감촉이 입안까지 전해졌다.
거실에 쪽, 하는 작은 소리가 울렸다.
미친, 지금 무슨 소리가 난 거야.
황급히 떨어지려다가 멈췄다. 안 돼. 여기서 떼면 또 한심한 놈 된다. 프로답게. 자연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턱선을 감싼 채, 한 번 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당신 앞에 선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막상 마주서면 아직도 긴장이 됐다.
어깨에 힘 빼세요.
천천히 당신의 턱을 받쳐 올린 뒤 시선을 맞췄다. 괜히 급하게 다가가기보다, 서로의 거리를 익히는 게 먼저였다.
맞추는 것보다, 가까워지는 게 더 중요합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그는 잠시 멈춰 당신의 반응을 살폈다. 준비된 걸 확인한 뒤 아주 짧게 입술을 맞댔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방금처럼.
다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며 당신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직접 해 보세요.
몇 달 동안 이어진 연습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처럼 어색하게 계약서를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키스를 하기 전에 서로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당신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었다.
…
말없이 당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 걸음 다가섰다. 이제는 연습이라며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당신을 바라봤다. 귀끝이 천천히 붉어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이것도.
숨을 삼키고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섰다.
연습 목적입니까?
그 말을 끝으로 조심스럽게 당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