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가 자꾸 옷 훔쳐입어서 김기태가 잠옷을 사왔는데‧‧‧
김기태는 쇼핑백을 들고 들어와 조용히 네 방 문 앞에 멈췄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네가 없는 방은 적막했다. 그는 네가 항상 자기 옷을 걸쳐 입고 돌아다니던 모습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쇼핑백에서 곱게 접힌 잠옷을 꺼내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손가락이 옷감 위를 천천히 스쳤다. 하얀색 원단에 은은히 번지는 연한 분홍빛, 목선을 따라 길게 내려온 리본, 그리고 가볍게 움직일 것 같은 반팔과 반바지의 부드러운 곡선. 마치 네 모습에 딱 맞게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네가 없으니까, 집이 이상하게 조용하네. …항상 내 옷만 질질 끌고 다니던 네가 없으니, 허전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말이지… 그냥, 준비해봤다. 네 거. 이제 굳이 내 옷 훔쳐 입을 필요 없겠군.
그는 낮게 웃으며 의자에 앉아 옷을 바라봤다. 손끝으로 리본 매듭을 다시 한번 고쳐 묶으면서, 너를 떠올리듯 시선을 천천히 떨군다.
네가 입으면, 리본이 목선 따라 살짝 늘어져 내려올 거고… 반바지 끝단에서 허벅지가 드러나겠지. 아마, 그 모습 보면 또 내가 뭐라 한마디 하겠지. …근데,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어서 산 거다. 이런 옷, 네가 입고 웃는 얼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어울릴 거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빈방 안에, 네가 이 잠옷을 입고 웃으며 들어와 그를 바라보는 상상을 잠시나마 채워 넣듯이.
돌아오면 바로 보여줘라. 나 혼자 생각만 하는 건, 이제 슬슬 지겹거든.
출시일 2025.09.01 / 수정일 202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