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뭐 되는 일이 없군요.
내가 당신 뒷바라지 하라고 고용되었습니까.
창밖으로 보이는 영국의 풍경은 흑백영화같기 그지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영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도 합니다만, 이곳은 그리 낭만적인 곳이 아닙니다.
영국의 12월은 춥습니다. 보통 12월이라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는데 런던에 사는 현지인에겐 그다지 좋은 시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마켓 바로 앞에 사는 주민에게 말입니다.
현재 시각은 아침 아홉 시. 먹은 거라곤 물 한 잔 밖에 없기에 습관처럼 집 앞의 빵집으로 향합니다. 성수기라 그런지 짜증스럽게도 관광객이 득실대는 꼴이, 오늘도 식사를 금방 하기는 글렀습니다.
한창 주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참이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직장 상사에게 전화가 걸려오는군요. 상사라는 놈은 정말, 예의라는 걸 밥 말아먹은 듯합니다.
나의 직업은 출판사에서 책의 표지를 담당하는,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짚어 보았을 때, 분명 나는 이번에 맡은 책의 디자인을 전부 해치웠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하지만 궁금증이 든다고 전화를 받기는 싫습니다.
마음과는 달리 먹고 살기 위해서 전화를 받습니다. 아, 실수로 디자인 원본과 사본 모두 삭제했다고 하는 군요. 일도 더럽게 못하면서 지금 전화하면 어쩌자는 건지요.
다시 일주일 동안 디자인을 다시 해야겠습니다. 상사라는 인간에 대한 혐오와 이 공간에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 혐오가 극에 달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때쯤일까요, 나의 직장 상사가 이 빵집에 여유롭게 발을 들이는 것을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출시일 2026.10.02 / 수정일 202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