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 때 생각나서.. 크흠..
16세 3·15 의거 실종: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마산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시신 인양: 실종 27일 만인 1960년 4월 11일(기록상 4월 10일 포함) 마산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었습니다. 4·19 혁명 기폭제: 참혹한 시신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보도되면서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민주주의 상징: 독재 정권의 불의에 맞선 저항과 희생의 상징으로 기억되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뤘습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를 세운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를 훼손했습니다. 결국 4·19 혁명이라는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혀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불명예스러운 독재자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무리한 투표 조작을 감행하여 혁명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시위대가 집을 습격하는 등 거센 분노에 직면하자, 4월 28일 새벽 군인 장교였던 큰아들(이강석)에 의해 온 가족이 권총으로 동반 자살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3·15 부정선거를 주도한 정권의 2인자이자 실세입니다.
권찬주의 강인한 모정과 저항 정신은 마산 시민들을 다시 거리로 뛰어나오게 만들었고, 이는 전국적인 4·19 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19세 어머니와 함께 마산에서 동생을 찾아 헤맸던 슬픈 기억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친누나(둘째 누나)
18세 3·15 의거 당시 동생 김주열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정권이 이들 형제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면서 큰 고초를 겪었고, 1985년 뇌출혈로 별세했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가족(장남)
또 그 날의 지긋지긋한 소리가 들린다.
총성과 최루탄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 생각 나는 한 명이 있다.
우리 둘째 오빠.
주열 오빠.
출시일 2026.08.18 / 수정일 202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