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요 며칠 전 깊은 바다 밑에서 말이다. 무거워지기만 하였다는 용왕님 어환에, 용궁전 어의는 육지 토끼의 간이 탁월한 명약이라고 했다.
본디 믿음직한 것은 거북이였으나, 허옇게 센 수염자락이며 축 처진 주름살은 중병의 용왕님 명보다도 짧아 보였으니. 그럼 수생하는 용궁 것들 땅 위의 토끼를 어찌 잡을 것인가 고심 끝에, 글쎄 거북이랑 비슷하게 생긴 자라가 또 있지 않겠느냐.
다만 태생이 주색에 밝은 자라 '별해'는 제 용왕님 목숨은 대수롭지 않은가, 얼큰히 취한 상판떼기 지나가는 여인네들 마다 돌아가기 바쁘다. 하여 뭍을 오른 근본적인 연유 따위는 제쳐두고, 혓바닥 헤벌레 떨어뜨려 꼬리 살랑대는 궁둥짝만 쫓아 청안의 모란관으로 들어섰다는 소리다.
토끼는 토끼고, 이건 이거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금세 달려나온 수인들이 자라의 옆구리를 파고 들자 입꼬리가 광대뼈를 툭툭 치올라 마냥 녹아내린다. 그때 마침 마당을 비질하는 기방 일꾼을 보아하니 반가운 얼굴이었다.
"오호라, 너는 Guest구나, 아직도 예서 일을 하는 게냐?" "엇! 별해 나리! 이놈이 갈 곳이 어딨겠습니까, 하하. 헌데 육지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음? 아, 그렇지. 이몸은 아주 중한 사명을......"
별해가 문득 말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한다. 가만, 이렇게 다시 돌아가면 또 언제 뭍을 오를 수 있을지 까마득한데, 고놈의 토끼 사냥으로 다 날려 버리면 향락은 언제 즐기란 게야. 교활한 자라는 제 아래턱을 쓸어만지다가, 필경 허릴 곧추 세우며 그의 얼굴에다 고하였다.
"듣거라. 내 용왕님의 명을 받잡아 이곳에 왔느니라." "...예? 용왕님이요?" "어허, 당장 부복하지 못 하겠느냐!" "히익!"
가히 입에 담기도 힘든 존귀한 글자를 듣고도, 두 눈 말똥말똥함에 호령을 친다. 깜짝 놀란 Guest이 흙바닥을 납죽 엎드려 꼬리까지 폭 내리붙이고서 낑낑거렸다. 쯧쯧, 별해가 몽매하다 혀를 찬다. 그리고 제법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용왕님께서 기체 미령하시어 육지 토끼의 간을 고대하고 계시니." "......" "모란관의 Guest은 오늘로 나를 대신하여, 그것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예, 예...?" "이레 뒤 바닷가에서 기다리마."
대뜸 제게 왕명만 맡겨놓으시고 풍류를 놀러 가 버리신다. 고개를 슬쩍 든 Guest이 별해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요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눈알맹이만 굴렸다.
그리고 문득 관상쟁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재물이라곤 쌀알만큼도 안 보이는, 젊어서 기구하고 박복할 팔자라더니... 참으로 용하긴 용한 치였다.
모란관 주인마님은 물가에 애를 내놓고 잠이나 제대로 올지 모르겠다며, 별안간 토끼잡이를 나서는 Guest에게 돈을 쥐여주었다. "거지처럼 어데서 빌어먹지 말라, 알간?" Guest은 기생들이 챙겨준 주전부리와 수통이 든 봇짐을 메고 무작정 걸어갔다.
앞선 하루는 통째로 공을 쳤다. 그러므로 제게 주어진 날은 고작 엿새. 행여 약조한 날에서도 두 손 허허하다면, 마당이나 비질하던 이놈 무슨 꼴이 날지 진정 암담한 것이었다. 불현듯 근심이 그곳까지 미친 Guest이 냇가에서 세수를 하고 냉큼 봇짐을 둘러메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아까 만난 한 수인에게서 아주 좋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토끼라는 족속들은 원체 날쌔고 잔머리가 좋아 사로잡기가 영 곤란할 거요. 허니 내 말해주는 것인데, 이미 잡힌 토끼가 있다면 어떻겠소?'
'묘춘이라는 토끼는 내 돈 안 갚은 지가 어느덧 두 해요, 두 해. 내 받을 생각은 진즉 접었으니 망정이지, 글쎄 노름판에 빠져서 고리대까지 얻었다는 거 아뇨. 제깟 게 갚을 재간이 어딨겠소? 덕에 꼼짝없이 잡혀가지구, 근래 화락골에만 있다고 들었소.'
토끼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다 알았으니 남은 건 이 다리짝에 맡길 테였다. 덜렁이는 봇짐은 어제만 해도 어깨가 결렸는데, 오늘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가볍기가 그지 없다. 다만 따악 한 가지, Guest의 속이 마냥 개운할 순 없는 한 가지가 말이다. 하필이면 그곳이 화락골이라는 점이었다.
어휴... 아무렴 급전이래도 하필...
Guest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중얼거린다. 이유는 화락골이란 데가, 돈놀이꾼 호랑이 대감마님이 둘씩이나 지키고 있는 땅이었기에 그러했다. 게다가 남쪽과 북쪽 어느쪽에 토끼가 있는지도 모르니, 여차했다간 호랑이를 두 번이나 마주쳐야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래도 용왕님 명이라고 하면 대감마님들도 묘춘을 내어주시겠지...
Guest은 애써 스스로를 달래며, 그렇게 화락골의 무경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화락골을 모르는 수인은 별세계에서 온 수인일 거다. 무경은 두 호랑이의 지배를 받지 않는 중간지대. 유흥의 명승이라더니, 장사치들과 구경을 온 외지의 수인들로 북적거렸다.
무경 거리를 거닐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킁킁, 콧잔등을 쓸고 들어오는 음식 냄새에 배에서 소리가 났다. 꼬박 걷기만 하였으니 그럴 법도 했으리라. Guest은 모란관 주인마님이 주신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으매 봇짐에서 주전부리를 꺼내 먹었다. 마침 지나가는 쥐 수인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쥐 수인들은 주워 듣는 것이 많기로 소문난 종족이었기에 그랬다.
이보시오, 내 말 좀 물읍시다. 여기 대감마님들 말이오. 근래 토끼 수인 하나 잡았다는 얘기 못 들으셨소?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