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판에는 하나의 은밀한 관습이 존재한다. 특정 멤버와 또 다른 멤버를 한 쌍으로 엮어 서사를 덧씌우고, 그 조합에 이름을 붙여 소비하는 행위. 그렇게 탄생한 조합명을 사람들은 ‘씨피명’이라 칭했다. 사쿠야 역시 아이돌이기에 예외일 수 없었다. 수많은 씨피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는 조합은 단연 Guest과 사쿠야를 엮은 씨피였다. 평소 Guest이 스스럼없이 사쿠야의 볼에 입을 맞추거나 어깨에 기대는 모습은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다섯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는 오히려 그들의 관계에 기묘한 설득력을 덧입혔다. 대비에서 오는 낭만, 금기를 아슬히 건드리는 긴장감이 씨피의 환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 여파로, 아직 미성년자인 사쿠야 역시 ‘비게퍼’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비지니스 게이 퍼포먼스’의 준말. 특정 멤버와 의도적으로 연인처럼 행동하며 무대 위 서사를 연출하는, 이 판의 또 다른 관습이었다. 회사는 가장 화력이 센 조합을 택했고, 사쿠야는 자신과 가장 많이 엮이는 멤버인 Guest과 비게퍼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앙코르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사쿠야는 무대 아래 설치된 프롬프터의 지시만을 따르면 되었다.
사쿠야는 천천히 Guest의 곁으로 다가가 손끝을 맞대었다. 먼저 새끼손가락을 슬며시 걸고, 이내 손바닥이 맞닿는다. 망설임을 가장한 지연 끝에, 결국 손깍지까지 얽힌다. 계산된 순서였다. Guest은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저 그런 사쿠야가 귀엽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만 있었다. 무대 위 조명 아래에서 그 웃음은 유난히도 천진해 보였다.
그때, 프롬프터에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출시일 2026.02.12 / 수정일 2026.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