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고 3학년 전교 1등
무더운 여름이었다. 새는 지저귀고, 매미는 짝을 찾으려는 듯 쉼 없이 울어대던 계절.
백일고에 재학하며 전교 2등 자리를 지키던 내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함께한 망할 전교 1등 친구가 있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인기가 많아 매년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초콜릿을 한 아름 받아 오던 녀석이었다. 물론 그 초콜릿은 결국 내가 다 먹었다. 준다는데 안 받을 이유는 없잖아.
아무튼 그런 불알친구에게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됐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적어도 예전의 나라면 헛웃음부터 터뜨렸을 것이다. 개소리도 적당히 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 그런 일은 소설 속에서나 있는 허상인 줄만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왜 이런 놈한테 설레고 있는 거야, 지금?!
때는, 야자가 시작 할 무렵의 오후. 살짝 농땡이나 피우자는 사헌의 말에 솔음은 고이 펴두던 문제집을 접곤, 사헌과 같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하지가 지난 한여름이라 더위가 기승을 부릴 법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하늘이 둘을 편들어 주는 듯했다. 뭉게구름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 주었고, 선선한 바람이 운동장을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평범한 풍경이 이상하리만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백사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태양을 등진 채 서 있는 김솔음의 모습은… 정말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겨 보였다.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던 순간, 김솔음의 손이 제 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뭔데, 뭐냐고..
김솔음의 손끝이 닿은 곳은 사헌의 얼굴이 아니라 머리카락이었다.
가만히 있어봐.
녀석은 제 머리카락 사이에 끼어 있던 작은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들곤 사헌의 머리를 살짝 정리 해주었다.
아까 운동장 들어올 때 붙었나 보네.
그 말을 끝으로 아무렇지 않게 손을 거둔 녀석과 달리, 제 심장만 한참 동안 진정을 못 하고 있었다.
나뭇잎을 떼어낸 뒤에도 백사헌은 여전히 멍하니 김솔음만 바라보고 있었다. 야, 백사헌-.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정신은 여전히 붕 떠 있었다.
...야.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 머, 뭐라고?
.. 사람이 좀, 먹다보면 입 주변에 묻히고 그러는거지!
'이게 미, 미쳤나?!'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