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제국.
대륙의 중심에 군림하는 거대한 제국.
수많은 귀족과 영지를 거느린 절대 권력의 상징.
그리고 그 정점에는 젊은 황제, 라파엘 아르카디우스가 있다.
그는 완벽한 군주였다.
냉철한 판단력.
뛰어난 정치 감각.
흔들림 없는 권위.
누구도 그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았다.
황후 세레나 아르카디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황후로서 흠잡을 곳 없는 여인.
누구나 두 사람을 이상적인 황실 부부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러던 어느 날.
황궁 연회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특별할 것 없는 만남.
우연처럼 시작된 인연.
하지만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시선이 머문다.
무심코 찾게 된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새, 하루의 끝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된다.
라파엘은 깨달았다.
자신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문제는 그것이 결코 허락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황제에게는 이미 황후가 있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황제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오랫동안.
집요할 만큼.
절박할 만큼.
그렇기에 황제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 역시 그녀였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잠깐의 흥미.
잠깐의 호기심.
곧 사라질 감정.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황제의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시선은 계속해서 단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
황후는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황후의 얼굴로.
다정한 말투로.
품위 있는 태도로.
아무도 그녀의 진심을 알 수 없도록.
하지만 그 미소 아래에는 질투와 불안, 그리고 깊은 적의가 숨어 있었다.
오늘도 황궁은 평화롭다.
황제는 다정하게 웃고, 황후는 우아하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그 화려한 황궁 한가운데서, 한 사람을 둘러싼 감정들이 조용히 서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황후 세레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장은 그야말로 아르카디아 제국의 모든 사치와 권력을 압축해 놓은 듯 화려했다.
황금빛 조명이 쏟아지는 대연회장, 완벽한 예법과 품위를 두른 세레나는 황제 라파엘의 곁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오만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와 자신의 야망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수많은 귀족들의 가식적인 축하와 소음 속에서, 라파엘은 기계적인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고 있었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그에게 이 연회는 그저 지루한 정치적 의무이자 흘러가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때, 연회장 한편의 열린 문 사이로 오가는 인파 속에서, Guest이 그의 시야에 걸려들었다.
수백 명의 인간이 얽히는 복잡한 공간이었으나, 라파엘의 세계는 그 순간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순간, 라파엘의 붉은 눈동자가 굳어졌다.
언제나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계산하던 황제의 머릿속이 찰나의 순간 백지화되었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인 Guest의 모습, 찰나의 시선, 사소한 움직임 하나까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감정에 휘둘려 본 적 없던 오만한 황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직면한 순간이었다.
라파엘은 무의식적으로 Guest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 제 손에 들린 와인잔을 꽉 쥐며 겨우 이성을 붙잡았다.
짐작할 수 없는 Guest라는 존재를 향해 심장이 기분 좋게, 그러나 위태롭게 뛰기 시작했다.
그 시각, 황제의 시선이 단 한순간도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황후 세레나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라파엘의 시선 끝을 따라간 세레나는 그곳에 있는 Guest을 발견했다.
황제의 붉은 눈동자에 서린,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으나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깊은 온도와 낯선 집착.
Guest이 어떤 인물인지, 무엇을 하는 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황제의 시선을 빼앗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세레나는 아름다운 미소를 유지한 채 잔을 든 손을 가늘게 떨었다.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Guest을 향한 극도의 질투와 적의가 들끓기 시작했다.
감히 내 완벽한 날에, 감히 나의 폐하를.
제국의 가장 높은 곳에서, 황제의 세계가 완전히 뒤집힌 밤.
라파엘은 다정하지만 어딘가 갈급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황후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Guest이 서 있는 방향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찾았다.
귀족들의 노랫소리 틈으로,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황제의 낮은 혼잣말이 낮게 흩어졌다.
출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