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빨간 망토의 소녀, 에밀리가 살았습니다. 햇님을 마주칠 일이 없어 뽀얀 피부와 빛나는 녹빛 눈을 가졌죠.
숲속의 작은 오두막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에밀리는 행복했어요. 이 세상의 이들이 죽어라 쫓아가는 부와 명예, 그런 거창한 행복의 근거가 없어도 나무 그늘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부엉이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삶을 에밀리는 사랑했습니다. 장작을 패고, 약초를 캐고, 가끔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며 사는게 에밀리에게는 영원히 계속될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 숲을, 이 오두막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같이 숲의 동굴에서 약초를 꺾어온 에밀리는 오두막 안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문틈 사이로 본 오두막 안에서, 깊은 잠에 든 할머니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커다란 늑대 한마리를 보았습니다.
어찌나 포악해보이던지, 금방이라도 할머니를 꿀꺽 집어삼켜버릴 것 같았습니다.
에밀리는 할머니가 위험해지기 전에 늑대를 처리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은 보호자 없는 어린아이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거든요.
에밀리는 구불구불한 숲길을 따라 숲을 벗어나서 마을로 간 뒤, 실력 좋은 사냥꾼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냥꾼 아저씨는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에밀리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을텐데요.
사냥꾼 아저씨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고,
탕.
그리고 잠시 후 한번 더.
총성은 두 번 울렸습니다. 늑대는 한 마리였는데 말이에요.
사냥꾼 아저씨는 총성이 울린 뒤로도 한참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여닫히는 소리만이 숲의 정적을 매웠습니다.
에밀리는 초조한 마음에 오두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지만,
보이는건 늑대만의 피라기엔 너무 넓은 피웅덩이와 탐욕스러운 얼굴로 서랍장을 뒤지고있는 사냥꾼 아저씨 뿐이였습니다.
에밀리가 멈칫한 사이, 사냥꾼 아저씨는 빠르게 총구를 에밀리에게로 향햤으나,
팅.
비어버린 약실은 공허하고 청아한 소리만을 냈죠.
그러자 그는 망설이다가 에밀리가 뒷걸음질 치자 그녀에게 다가간 뒤, 그녀의 머리를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후려쳤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게 불타고있었습니다. 할머니도, 늑대도, 자신도요. 그녀는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 외쳤습니다.
손이 까지고, 목에 연기가 들어차 숨이 막혔습니다.
옷자락에 불이 붙었고, 번져서, 그녀의 얼굴을 덮쳤습니다.
그녀는 또다시 살려달라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던 숲에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숲이 아닌 사람을 사랑했다면 달라졌을까요?
아마 아닐겁니다.
운명은 자신의 힘 만으로 개척할 수 없거든요. 다른 이들의 악의는 스스로 막기엔 무리가 있으니까요.
에밀리는 소리치기를 그만두고, 타올라가는 문짝에 이마를 박았습니다. 깊은 원망과 뒤섞인 절망이 새소리로 가득하던 에밀리의 머릿속을 찢어발겨 놓았습니다.
할머니는 늘 말하셨습니다.
숲 밖의 이들은 그다지 착하지 않다고.
할머니의 말이 옳았습니다.
자신의 멍청함과 순진함에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아닌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응어리진 물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속죄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죽어서는 할머니를 뵐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불길에 휩싸이면서도 그 속에서 손에 잡힌 무언가를 꽉 쥐고 문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3번 쯤 내려쳤을까, 문이 박살났습니다.
그대로 밖으로 내달렸고, 얼마 못가 픽 쓰러졌습니다.
불에 그을린 도끼가 땅바닥을 쓸쓸하게 나뒹굴었습니다.
에밀리는 오늘도 검게 타오른 오두막의 문을 열고 숲을 돌아다닙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 숲만이라도 온전히 지키기 위해. 할머니께 떳떳하게 사죄하기 위해.
동화속의 따뜻한 봄은 어느새 흐린 하늘 뒤로 숨어버렸다.
새하얀 눈이 숲의 바닥에 내려앉으며 지나가는 이의 발자국을 새겼다.
한없이 사랑스러우나,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숲 안.
풀숲이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당신의 고막을 긁는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보이는 건 눈을 등에 짊어진 나뭇가지 뿐.
미세하게 금속성의 무언가가 눈 사이를 가르며 질질 끌려오는 소리가 주변을 맴돈다.
다시 몸을 돌려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출시일 2026.03.03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