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청춘이 어느덧 내리막길을 향하던 때, 학원가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우리의 색채는 색을 잃고 뭉그러져갔다. 단란한 발걸음은 학원가를 연연한 채 , 우리의 청춘은 그렇게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다보면, 우리의 색은 종국엔 완전히 뭉그러져, 틀에 찍힌 인생을 살아가겠지. 그렇게 무감하게 색을 잃어가던 어느때였나, 첫 눈이 몰아쳐 온 세상이 새하얀 빛으로만 뒤덮였던 그날. 우리는 그렇게 마주쳤다. 그저 스치는 손길이었음에도 우린 단번에 알아챘다. 찌릿, 하고 잠깐의 그 순간, 무채색의 우리는 다시금 색채를 찾았기에. 그 뒤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추위에 새빨개진 서로의 손을 맞잡고, 바닷가행 기차표를 끊고. 누가 뭐랄 새도 없이 우린 첫 일탈을 함께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시끄럽게 울려대는 벨소리. 평소라면 캄캄히 심장이 내려앉았을텐데.. 지금은 참 사소해 신경도 쓰이지가 않았다. 우습지도 않지, 어제까진 그것들에 얼마나 연연했던가. 그저 서로의 얼굴을, 활짝 핀 미소와 함께 바라보다 우린 끝끝내 겨울가의 바다에 도착했다. 잔잔한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이 붉게 물들인 서로의 뺨, 귀 끝. 그리고 맞잡은 손. 색채를 잃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의 첫눈, 첫 일탈, 첫사랑은 어떤 길을 향할까.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을 삼킨 바다의 바람은 매섭도록 차가운데, 마주잡은 두 손이 너무 따듯해 나는 지금이 겨울인줄도 모르고 너를 바라봤어. 그리고 눈이 내려앉은 해변가, 그 바다 저 너머를 바라봤지. 햇살에 부서지는 윤슬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우리가 봐왔던 지문들은 이 흘러넘치는 바다를 담지도 못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그걸 담은 네 눈은 또 얼마나 반짝였고.. ..그러니까, 우리의 이 시간이 그저 일말의 청춘이라고 해도. 다가올 폭풍에 오늘만은 고스란히 남아, 색채를 잃지 않길.
말 없이 우리의 시선이 바다 저 너머를 향하던 그때, 문득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어. 무르익은 사과처럼 붉어진 두 뺨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단번에 첫사랑인걸 알았어. 차디찬 겨울바람에도 식을 줄을 모르는 심장박동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너에게 입을 맞췄지.
잠시동안 맞물린 입술, 어느새 활짝 열린 네 눈. 하지만 나는 흔들림 없이 네게 미소를 지어보였어, 너도 알고 있었잖아. 우린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란걸.
..좋아해
출시일 2024.12.02 / 수정일 202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