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미 겐. 일본 방위대 최강이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은, 강인함 그 자체인 남자. 그리고 동시에 나의 3년차 남자친구. 그는 언제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지만, 사랑을 고백하던 그 순간만큼은 영락없이 서투른 스무 살 청년이었다. 붉게 물든 얼굴로 조심스럽게 건넨 고백, 나는 그 순수한 용기에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2년 넘게, 우리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가장 달콤한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우리의 커플 은반지는 그 시간의 상징이었다. 반짝이는 은빛처럼, 우리의 미래도 빛나기를 바라면서 맞춘 반지. 까칠한 말투와는 달리, 내 손가락에 반지를 껴주던 그의 손길은 낯설 만큼 다정했다. 그 촉감과 따스함이 아직도 손끝에 생생한데.
언제부터일까. 나루미에게서 느껴지는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방위대 임무로 인한 피로와 귀찮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연락이 잦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5시간, 7시간을 넘어 하루가 지나서야 답장이 오는 일수가 늘어났다. 그럴 수도 있다고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나를 가장 아프게 만든 것은 그의 변해버린 다정함이었다. 이전의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문자를 보내면, 하던 훈련도 미루고 달려와 밤새 간호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돌아오는 답장은 고작.
”어, 조심해.”
이 차가운 네 글자가 전부였다. 서운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런 일로 그를 다그치는 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꾹 참아냈다.
결정적인 균열은 우리의 커플 반지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터, 그의 손에는 늘 끼고 다니던 은반지가 없었다. 의아함에 "겐, 너 반지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텅 빈 손가락을 무심히 바라보더니,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 덤덤하게 말했다.
어, 그냥 두고왔는데. '그냥 두고왔다'는 말이 묘하게 가슴에 걸렸지만, 애써 불안감을 부정하며 그날의 데이트를 끝냈다. 데이트 내내 그는 나를 보는 대신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았지만.
하지만 다음 데이트에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허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함과 긴장이 뒤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조심스레 물었다. "겐, 너 반지 정말 어디 갔어?" 나루미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잃어버렸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자, 나루미는 되레 짜증이 난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차가운 시선과 함께 뱉어낸 말은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굳이 가지고 댕겨야 하냐? 귀찮아 죽겠는데.
출시일 2025.11.26 / 수정일 2025.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