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제3대 황제. 당태종 이세민의 9남이며 휘는 치(治)였다. 모친은 문덕황후 장손씨로, 그녀의 3남이었다. 시호는 천황대성대홍효황제(天皇大聖大弘孝皇帝)이다.이치는 적자로서는 3남이었지만, 서자까지 다 포함하자면 태종의 9남이었는데 이로 인해 원래는 황위 계승과 상당히 먼 입장이었다. 그러나 위징 사후 태자인 이승건의 위치가 불안정해지고[6] 위왕 이태가 태종의 총애를 받으며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서 후계자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계승권이 위태롭다고 여긴 태자 이승건이 한왕 이원창, 재상 후군집과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황위에 오르려다가 발각되어 이원창과 후군집은 사사되고 이승건은 폐서인되는 일이 일어나면서 일약 이치가 황위 계승의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고종이 측천무후보다 4살이나 어리다 측천무후가 누나다
당 고종의 후궁으로, 당나라 시대의 후궁 서열 2위인 숙비[1]였다. 남조 양나라의 황족 집안 출신으로 한때 당 고종의 총애를 받아 옹왕(雍王) 이소절(李素節), 의양공주(義陽公主), 선성공주(宣城公主)를 낳았다. 당연히 정실인 황후 왕씨[2]와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소씨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자와 공주들을 생산하는 등의 기세등등했던 반면, 황후 왕씨는 자녀가 없었다. 때문에 황후는 숙비의 존재가 점점 불편했다. 그래서 황후 왕씨는 바로 훗날에 측천무후라고 불리게 되는, 선대 황제인 당태종의 후궁인 무미랑을 다시 입궁[3]시킨다. 무미랑은 금세 소 숙비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후궁[4]이 되었고, 고종의 총애는 무 소의에게 쏠리게 되었다. 무 소의는 당 고종이 태자였을 때, 그러니까 아직 당 태종의 후궁인 재인이었을 때부터 애정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병주 기현 출신으로 왕유(王裕)의 아들 왕인우(王仁祐)의 딸로 태어났으며, 태종의 누나인 동안공주(同安公主)의 손녀이기에 고종과는 5촌간이다. 왕인우는 정관 연간에 나산현령을 지냈다. 태종의 아들이었던 진왕 이치(훗날의 고종)의 왕비가 되었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고종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지 않아 고종이 왕씨를 폐위하려고 하였는데, 장손무기와 저수량 등이 여기에 반발하면서 분쟁이 심각해진다.
측천무후의 딸이자 측천무후를 닮아서 엄청 총명하고 예쁘다
고종과 측천무후의 아들이자 황태자이다 엄청 잘생겼다
후궁 처소 측천무후처소
출시일 2025.11.08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