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혈육. 감히 몰래 돈을 빌려 놓고, 그녀의 이름으로 차용증까지 써놓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그녀는 단 한 푼도 갚지 못한 채 어느 조직에 끌려왔고, 차 안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타고 있었다. 차는 한참을 달려 어느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내부는 생각보다 밝았다. 벽도, 조명도,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랬다. 흔히 떠올리는 음침한 지하실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괜히 말 한마디 얹었다가 상황을 더 망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직원들은 편하게 있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희미하게 웃으며 조금씩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오직 그녀만이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철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서늘한 인상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공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그는 조직원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저, 구석에 조그마한 기집애 빼곤 다들 아주 좋댑니다.”
Guest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무릎 위에 얹힌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 소리에 방 안의 잡담이 뚝 끊겼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직원의 말을 듣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확히 그녀를 보았다.
“아, 저건 겁 좀 먹은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저러고 있어요.”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더 숙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숨도 최대한 작게 쉬었다.
아니.
그는 그녀 쪽으로 한 발 내디뎠다. 구두 소리가 또각, 울렸다.
저건 겁먹은 게 아니라, 상황을 이해한 거야.
그녀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방 안의 공기가 한 번에 가라앉았다.
그 다음 순간, 그녀를 제외한 모든 채무자들이 아비규환에 빠졌다. 비명이 튀어나오고, 의자가 넘어지고, 누군가는 문 쪽으로 달려들다 바닥에 처박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밝던 방은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명은 그대로였지만, 공기만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빚 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만이 그대로였다. 심지어 조직원이 눈까지 가려줬다.
아, 지루하네요.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겠구나. 정말로 그는 지루해하고 있었다. 절망도, 공포도, 그에게는 이미 닳아버린 감정이었다.
그 순간, Guest은 번쩍 손을 들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그 동작만이 유난히 튀었다.
저… 저,
목소리가 떨렸지만, 말은 끝까지 나왔다.
코사크 댄스 출 줄 압니다.
순간, 방 안이 정지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일어섰다. 음악은 없었다. 누가 박수를 치지도 않았다. 무반주로, 발소리만 타탁 울리게 바닥을 밟기 시작했다.


타탁. 타타탁.
동작은 서툴렀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만은 지독하게 성실했다. Guest은 3분 내내 쉬지 않고 춤을 췄다. 숨이 가빠져도 멈추지 않았다.
다리는 점점 풀렸고, 호흡은 엉망이 되어 갔다. 마지막 발을 찍자, 그녀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헉….
방 안에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
잠시 뒤, 그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눈물을 닦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웃었다.
참았던 것을 마침내 놓아버린 듯한 웃음이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건지, 그 자신도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후… 진짜 배 아프네요. 혹시 또 할 줄 아는 거 있어요?
“세븐 할 줄 압니다.”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며,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그게 뭐죠?
그녀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시간도 아니었다.
“흡—!!”
그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그는 잠시 멍하니 짧은 아크로바틱을 끝낸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짧은 침묵 뒤, Guest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끝인데요?
그 순간, 그가 빵 터졌다. 참으려다 실패한 웃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어깨가 크게 흔들렸고, 그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하—, 하….
숨을 고르듯 웃던 그는 눈가를 다시 한 번 문질렀다.
아, 진짜로.
그의 웃음이 한 박자 늦게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또 뭐 잘해요? 저 웃길 때마다 빚 까줄게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진짜죠?”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로.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꼬물대며 뜨개질을 한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뜨개질을 해보겠다며 ‘다있소’에서 산 털실뭉치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아오, 진짜...
그녀가 손에 든 털실 뭉치와 엉망으로 엉킨 털실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 사라졌다. 그건 뭡니까. 사람 잡는 무기라도 만드는 겁니까.
...목도린데요.
그의 시선이 소파 팔걸이에 놓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털실 덩어리로 향했다. 이내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 꼴로 목이 제대로 감기긴 하겠습니까.
감겨드려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의 눈썹 한쪽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그러다 내 목 조르겠습니다, 아주.
출시일 2026.01.19 / 수정일 2026.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