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ㅡ..아, 몆 살이더라? 나이 같은 건 안 센지 오래여서.
나는 저승사자다. 새까맣지만 귀티가 흐르고 기묘한 기운을 풍기는 이 자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흑운 두루마기? 뭐래, 두루마기는 유행이 지난 지가 언젠데ㅡ 난 꽤 트렌디한 저승사자라고.
한 놈, 두 놈, 세 놈ㆍㆍㆍ 부터 시작해서 내가 보낸 녀석들은 대략.. 아, 도무지 셀 수가 없네.
ㅡㅡㅡ
하루 일과는 늘 이랬다. 목에 밧줄이 걸린 人, 물에 흠뻑 젖어있는 人, 약에 취해있는 人, 온몸이 부러진 人... 가지가지하게 아파보이는 人들을 붙잡아다 괜한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전부다.
도대체 왜 그러는거지? 아니, 아직 당신네들의 명은 다하지가 않았는데. 이러면 환생도 못한다고요, 이 화상들아.
솔직히 말하면 따분했다. 난 찬란한 죽음들을 맞이하고 인도해주고 싶었어. 그 말라붙은 눈물 자국들은 그만 보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는 상제께서도 별 수가 없을 문제였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는 늘 더럽고 비참한 죽음들을 이끌어가야만 했다.
ㅡㅡ
그런데 어느 미친 人이...
나와 계약을 맺었다. 지상에서 유행한다나 뭔가 하는 강령술을 따라해서. 아니, 그런 게 될... 수가 있네? 보통 이런 건 옆 나라의 그 '악마'라는 녀석과... 큼큼. 아무튼.
우리 상제님 뒷목잡고 쓰러지시기 전에 재빨리 지상으로 내려가 그 무모하기 짝이 없는 人을 찾아갔다.
딱히 덧붙일 말은 없고...ㅡ별나더라, 참. 또라이가 따로 없어.
내 기나긴 인생 여간 미친놈들이 한 두 명은 절대 아니였지만 이만하게 다른 쪽으로 돌아있는 人은 처음이였다. 다른 놈들은 뭔가 그 자체 그대로 미쳐있다면, 얘는..
유독 내 속을 박박 긁기 위해 미쳐있는 것 같다.
며칠동안 지내보니 정이 들었다. 왜 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너라면 나에게 찬란한 죽음을 선사해줄 수 있겠다고 믿었는데.
넌 보란듯이 데롱데롱 매달렸다. 신선하게.
그땐 눈에 뵈는게 없었어.
상제님, 죄송해요. 얘는 절대 곱게 보내진 못할 것 같습니다.
ㅡ이 곳은 살아있지 않다.
유현은 정체모를 어두컴컴한 곳에서 머리를 감싸쥐며 주저앉았다. 벌써 수 십번. 온몸에는 쓰러지며 생긴 멍들이 수두룩했다. 머리속에는 터질 것처럼 여러 죽음들로 가득했다. 아직 812555522193282110223....,,개의 죽음 모의체험이 남아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까마귀들이 가득했다.
그곳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위도 아래도 없고, 벽도 천장도 없는데 묘하게 무겁다. 공기라고 부르기엔 너무 차갑고, 어둠이라고 하기엔 어딘가에서 희미한 불빛이 맥박처럼 깜빡였다.
까마귀 떼 한가운데, 허공에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심연 같은 눈동자가 바닥에 웅크린 유 현을 내려다본다.
아직 울 힘도 남았어?
혀끝에 비웃음이 묻어났다. 하얀 손가락이 허공을 가볍게 튕기자, 유 현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죽음이 선명하게 각인됐다. 교통사고. 횡단보도. 빨간불인데도 멈출 수 없었던 타이어 마찰음.
이건 4,201,007번째쯤 되려나. 세는 것도 귀찮아지네.
흰의 어깨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 날아갔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유 현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구경하듯, 아니ㅡ확인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