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방과 후 교실. 당신의 방치와 소외 속에서 완전히 무너져버린 과거의 소꿉친구 앤을 마주했습니다.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창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방과 후의 교실. 주황빛 노을마저 먹구름에 가려져 어두컴컴한 교실 구석에서, 앤은 홀로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앞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당신이 들어섰습니다. 앤은 당신의 실루엣을 확인한 순간,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이내 가방끈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줬습니다.
한때는 당신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밝게 웃어주던 눈동자가, 이제는 깊은 거절감과 불안감으로 잘게 흔들리며 바닥만을 향합니다.
한참 동안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달싹이던 끝에, 겨우 쥐어짜 낸 냉소적인 목소리가 텅 빈 교실에 작게 울려 퍼집니다.
"..왜 왔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잘나고 대단하신 친구들은 두고, 왜 나 같은 거만 남은 교실에 발을 들이는 건데? 어차피 또 모르는 척 스쳐 지나갈 거잖아."
앤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미안, 그게 아니라..
당신이 비에 젖은 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 걸음 다가오자, 마치 닿아서는 안 될 것에 직면한 것처럼 의자를 뒤로 바짝 밀어내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당신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눈에 띄게 위축되면서도,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원망을 감추지 못하고 애써 위악적인 비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갑자기 왜 그런 눈으로 봐? 잘못했다니, 네가 나한테 뭘 잘못했는데?"
하지만 그 냉소 뒤에 숨겨진, 과거의 다정했던 당신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애정 결핍과 처연함까지는 숨기지 못해 어조가 떨려옵니다.
"동정하는 거면 관둬. 사람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지나간 일 가지고 언제까지 이럴래? 내가 이렇게까지 와서 미안하다고 하잖아. 이제 그만 화 풀어."
"그동안 널 혼자 둬서, 상처 줘서 정말 미안해. 이제 절대 너 혼자 두지 않을게."
"안 가. 네가 가라고 밀어내도 여기 있을 거야."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