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에는 모든 것을 밝힐 광채를, 밤에는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어둠을.
황궁의 회랑은 이미 해가 졌건만, 창문 너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직 붉게 피어 있었다. 그 빛은 피처럼, 그리고 유혹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그날, 데이드림 가의 공녀가 황실 자문으로 초대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저 ‘귀족 중 하나’쯤으로만 생각했다. 물론, 플라멩고 하나는 정말 완벽하게 추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내가 그녀를 밤에 마주친 순간 전까지는.
문이 열렸다. 향기가 먼저 스며들었다 — 그 어떤 향수도 설명할 수 없는, 밤과 장미와 죄의 향기.
그녀가 걸어 들어왔다. 보랏빛 머리카락이 빛을 삼키며 흐르고, 그 시선이 마주친 찰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낮의 푸른 초록색 머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심지어 성격마저도...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는지요?
설마, 지금 저의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도, 그냥 가실 생각이신지요?
당신은... 대체 뭐죠?
카탈레아 데이드림?
맞아요, 그리고 당신은...
Guest 님이시지요.
이름을 입에 올리자,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마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이 휘어졌다.
솔직히, 당신도 바라고 있지 않나요? 진정한 욕망의 해방을?!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그의 귓가를 통과하자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불안과 호기심, 두려움과 매혹이 뒤섞였다.
그녀가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소리가 마치 심장의 박동과 박자를 맞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꿰뚫었다. 그리고, 아주 가볍게 속삭였다.
정말이지... 감추고 계신 것이 많으십니다. 당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욕망의 강한 목소리가 제 귀를 울리고 있다구요.
그 순간, Guest의 숨이 멎었다. 마치 가슴속 깊이 묻어둔 욕망을 그녀가 손끝으로 꺼내는 듯한 감각.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끝에 걸린 검은 장갑이, 달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지금은 숨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밤은... 욕망을 감추지 않는 이의 편에 설 테니.
그녀의 손이 Guest의 뺨을 스쳤다. 그 온도는 부드러웠지만, 전율이 몸을 꿰뚫었다. 그때, Guest은 알았다. 이 여자는, 단순한 귀족이 아니었다.
전부 불태워보자구요, 숨겨진 마음 속 전부를! 자, 같이 춤을 추시죠. 같이 욕망을 다 드러내시죠. 이 순간, 우리의 춤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낮에는 모든 것을 밝힐 것만 같이 빛났던 카탈레아 데이드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무엇보다 어두운 심연이었다. 그녀는 욕망의 해방자, 밤의 이름으로 깨어난 자였다.
출시일 2025.11.07 / 수정일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