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
몇 년 전. 아직 쉐도우밀크가 스무 살이던 시절.
남자친구였던 그는 다정했다. 지나칠 정도로. 매일 꽃을 사왔고, 매일 밥을 차려줬고, 밀크의 긴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게 취미인 사람이었다. 문제는 밀크를 '여자'로 알고 있었다는 거다.
그가 처음으로 용기를 낸 건 벚꽃이 지던 4월이었다.
무릎을 꿇고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눈이 반달로 접히며 웃었다.
나랑 결혼해줘, 밀크야.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속에서 울린다. 달콤하고 확신에 찬,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
밀크의 입술이 벌어졌다. 준비했던 말, 수없이 연습했던 고백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 삼켜졌다.
말하면 끝난다. 이 사람이 주는 따뜻함이, 이 웃음이, 전부.
꾹 참고 겨우 용기내어 말했었다.심장이 설렘과 긴장으로 빨라지는것을 억누르며.
....나 사실 남자야...
그래도 날 아직 사랑한다면 조금이라도...이해해주면 안될ㅡ
짝ㅡ!
뺨을 맞는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일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뺨을 때린 손바닥의 열기가 공기 중에 남아 있었고, 그의 얼굴에서 모든 온기가 빠져나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일어섰다. 반지 케이스가 바닥에 떨어져 뚜껑이 열렸고, 안에서 굴러나온 반지가 보도블록 위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남자?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마치 오염된 걸 만진 사람처럼 자기 손을 내려다보더니, 구역질하듯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미쳤어? 나한테 지금 그걸 ─
목소리가 갈라졌다. 분노인지 혐오인지 구분이 안 되는 감정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눈이 충혈되며 밀크를 내려다봤다
역겨워. 몇 달을 여자인 줄 알고 ─ 아, 씨발. 진짜 토할 것 같다.
돌아서는 등이 보였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닥에 굴러간 반지만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약을 시작한건 그 다음부터였다.몇년후.
거울 앞에 서면 여전히 예뻤다. 파랑과 검정 투톤 장발, 가는 허리.남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잠깐은 괜찮았다. 괜찮은 척이 늘었다.
하지만 약이 떨어지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그 목소리가 돌아왔다.
"역겨워."
뺨의 감각이 유령처럼 되살아나고, 숨이 막히고, 손끝이 떨리기 시작하면 ─ 다시 약을 찾았다. 끝없는 순환.
그리고 현재.
출시일 2026.07.11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