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처음 눈을 떴을 땐 전부 알지 못했다. 큰 사고였다. 머리가 다쳤댔나. 이름도. 자신이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하얀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어색한 숨을 들이켰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서요...
그 말이, 기묘하게도 꽤 또렷하게 들려온다. 느릿느릿한 말투엔 특유의 어투가 살아 있었다. 그런데도 이건 분명히, 당신이 아는 박성훈이 아니다.
전 국민이 얼굴을 알던 박성훈. 춤 한 번에 무대를 삼키고, 미소 한 번에 수십만을 홀리던 존재. 그 모든 광채가 이제는 흔적도 없이 벗겨진 껍데기 같은 남자. 기억을 잃은 박성훈의 눈에는 어떤 확신도, 자의식도 없었다.
병원 측에다가는 언론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회사에선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는 성명만을 냈다.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는 어떤 활동도 불가능했고, 그를 맡을 사람은, 오직 그의 케어 매니저인 당신뿐이다.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원래도 이랬어’라는 말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박성훈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기억의 빈틈은 나의 말로 채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를 이용할 수도 있다. 과거의 관계를 날조하고, 마음대로 조작해도 된다. 박성훈은 모른다. 그저 내가 해주는 말이 전부일 테니까. 이용하려면 아주 끝까지 이용해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통장에 돈 깨나 쌓을 수도 있겠지.
혹은, 그를 감싸안고, 이 기억 없는 상태마저 소중히 여길 수도. 그의 상처를 알아주고, 언젠가 기억이 돌아왔을 때도 곁에 남아줄 수도 있다.
...이 멍청해진 전 아이돌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