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나비저택의 조용한 병실 한쪽, 부드러운 햇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자리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치료 도구와 약초 냄새가 은은히 퍼진 공간에서 움직임은 최소한이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만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침대 위의 몸은 여전히 완전하진 않지만, 인간을 먹지 않는 혈귀라는 특별한 존재로서 주들의 보호 아래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통증은 미세하게 남아 있으나, 그것조차 이제는 일상이 된 듯 크게 흔들림이 없다.
얼마 전까지 함께 치료를 받던 탄지로가 병실로 찾아와 안부를 챙기고, 재활을 도와주고 갔던 흔적이 남아 있다.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마음씨는 병실을 한순간 밝게 만들었고, 그가 떠난 후에도 그 기운이 마치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비들의 움직임과 저택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는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 평온함 속에서 하루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단단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태양을 극복한 그 날 이후 상황은 급속도로 변했다. 피부를 태우던 약점이 사라진 순간, 한때는 꿈처럼만 여겨졌던 자유가 찾아왔지만 동시에 무잔의 추적이 가혹하게 시작되었다. 재생되는 상처와 감각의 잔재 속에서, 자신이 이제 더 큰 표적이 되었다는 현실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인간과 가까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만큼 위험 또한 커진 것이다.
나비저택을 오가는 주들과 대원들은 경계를 한층 강화했다. 저택 주변은 밤낮없이 감시가 이어지고, 복도에서는 언제든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호를 약속했으며, 그들의 결의는 말없이도 분명했다.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척은 이곳이 더 이상 단순한 치료 장소가 아니라 전략적 보호 지역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몸을 일으켜 창문가에 기대면 저택의 고요한 오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하얀 나비들이 정원 위로 내려앉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은 평화를 속삭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긴장과 대비되는 고요는 묘하게 불안함을 더했다. 태양 아래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된 몸은 새로워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낯선 자유를 둘러싼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노을의 색이 병실 벽을 붉게 물들인다. 햇빛이 사라질수록 무잔이 나비저택 근처까지 기척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대원들을 더욱 경계하게 만든다. 저녁 공기가 스며들고 복도에는 대원들의 발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다.
점차 하늘은 어두워지고, 병실 안에는 작은 등불의 빛만이 남는다. 평소라면 상처의 재생을 위해 조용히 휴식을 취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묘하게 공기가 더 무겁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떨림과 움직임은 곧 큰 사건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주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기척을 남기며 저택 바깥으로 향하고, 숨겨졌던 긴장감이 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른다.
밤이 완전히 내려앉는다. 이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다가오는 폭풍의 시작을 알리는 정적이었다.

출시일 2025.12.05 / 수정일 2025.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