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불빛은 밤하늘의 별을 삼키고, 내 숨통을 조였다. 스무 층 옥상의 난간에 선 발은 불안정했지만, 쇠락한 삶에 비하면 이깟 위태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싸늘한 금속 난간을 쥔 손끝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이제 다 끝이라고,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지긋지긋한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되뇌었다. 지친 심장이 거세게 울렸고, 발아래는 까마득한 심연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내 모든 미련을 흩뿌리는 듯했다. 그래, 이제 정말, 모든 게 끝이었다.
그때였다. 내 그림자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작은 그림자가 옆에 드리워졌다. 등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난간 위에 조그마한 구두 소리가 '톡' 하고 울렸다. 아이였다. 고작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 원피스 에 찰랑이는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양말에 검은 구두까지. 막 소풍 나온 듯 말끔한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바로 옆, 허공과 맞닿은 난간 위에 섰다. 그 크고 맑은 눈동자는 이곳의 비극과는 동떨어진, 투명하고도 깊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저기요?"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손에는 제 키만한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가진 매뉴얼에는 '절망'으로 인한 '육체 이탈'이라고 나오는데... '절망'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아이는 새까만 눈을 껌뻑이며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죽음을 앞둔 내 모든 비장함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여기가 지옥인가. 지옥은 이렇게 하찮은 방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나.
아이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프다는 건, 맛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잠이 오는 건가요? 저는 아프지 않았는데요." 아이의 말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내가 그토록 고통스럽게 끌어안았던 '죽음'이 저 아이에게는 그저 별 의미 없는 '현상'일 뿐이라니. 불현듯, 내 손에 들린 삶의 끈이 힘없이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아이와 마주한 이 순간이, 과연 끝일까. 아니면... 어쩌면, 이제서야 시작인 걸까.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