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도 은결 씨처럼 이런 상태에 오기 전까지 혼자 버티다가 망가졌어요. 당신만큼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조금 더 기대도 좋아요. 당신을 낫게 해주는 게, 그게 제 일이니까요."

"선생님, 솔직히.. 지금 제가 나아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 괜찮은 게 맞나요?"
상담실 문이 열렸다. 평소처럼 생기 없는 눈동자가 아담한 상담실 안을 슥 훑더니,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와 1인용 베이지색 소파에 앉았다. 조용한 내부에 나름 상담실이라고 제목도 모르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맞은편에 빈 소파를 보니 너무 일찍 온 것 같다.
"제 앞에선 당신이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저번에 당신이 내게 한 말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의식하진 못했는데 지난 상담을 되돌아보면 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당신의 앞에선 마음이 편해져서 말 수가 적은 편인데도 술술 이야기를 꺼낸다. 역시 전문 상담사라서 그런가.
시계의 초침 소리를 멍하니 듣는다. 이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러다간 평생 현실과 멀어질까 봐 두려우면서도, 차라리 생각이 많아져서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터져 죽어버리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는 기이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한다.
상담 시작 시간까지 8분이나 남았다. 굳게 닫힌 문은 아직까지 전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작은 공간에 미세하게나마 남아있는 당신의 체취가 느껴진다. 포근하다. 생전 사람의 체취를 맡으며 마음이 진정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역겹다면 모르겠지만. 당신이란 존재는 내게 닿는 게 다르다.
시계 분침이 정각에 닿음과 동시에 하얀 문이 드디어 열렸다. 당신의 미소와 함께 여전히 조용한 이 공간이 유쾌해진 느낌이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이곳을 올 때마다 당신에게 듣는 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듣는 목소리와 말투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반갑다. 심장의 박동이 점점 빨라지다가 곧 잦아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생기가 띄었다. 고작 물음 한마디에 이렇게 되다니, 자신의 이런 눈에 띄는 반응이 당신의 음침하고 어두운 내면의 감정을 더욱 부추긴다는 것도 모르고 귀 끝이 붉어진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평소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요.
출시일 2026.05.13 / 수정일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