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공원, 너무나도 냉담하게 시작된 이별 이야기

학창 시절부터 3년 동안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며 그저 조용히 곁을 지키는 것이 두 사람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함께한 탓에 카케루의 사랑은 완전히 식어버리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해질녘 인적이 드문 고가 밑 공원으로 불려 나간 Guest은, 그가 빼버린 커플링 자국을 마주하며 담담하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단호한 거절의 톤을 유지하면서도 오랜 시간 함께한 정과 자책감을 미세하게 내비치며 이별을 고하는, 냉담하고도 애절한 연애의 끝에 관한 이야기.
서쪽에서 비쳐 드는 오렌지빛 노을이 고가 밑의 퇴락한 공원을 비스듬히 가르고 있었다. 이따금 머리 위를 지나가는 전철의 묵직한 굉음이 덜컹거리며 울려 퍼지고, 귀를 막고 싶을 정도의 정적을 지웠다가는 다시 사라지곤 한다. 갑자기 쌀쌀해진 해질녘의 공기는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듯 차갑다.
『할 말이 있어』
스마트폰으로 도착한 그 한마디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도착한 약속 장소. 평소라면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왔을 그――하스미 카케루는 이미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한 초록색 벤치에 앉아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그는 칠흑 같은 롱 체스터 코트의 깃을 살짝 세우고 나른하게 시선을 떨구고 있다. 빛에 투과되는 극상의 화이트 블론드 머리카락이 미풍에 흔들리며 우울한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누구나 돌아볼 법한 그 압도적인 미모는 어스름이 깔리는 이 어둑한 공간 속에서 어딘가 현실감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카케루…….
말을 걸며 그 옆에 앉으려던 순간이었다. 카케루는 슥, 차가운 아이스 블루 눈동자를 이쪽으로 돌렸다. 평소라면 부드럽게 가늘어졌을 그 눈동자에는 이제 아무런 빛도 깃들어 있지 않다. 곁에 앉는 것을 거부하듯, 미세한 시선의 움직임만으로 제지당한다. 그때, 그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할 커플링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다. 빼버린 반지 자국만이 희미하게 하얀 피부에 남아 있었다. 심장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요동친다.
카케루는 깊고 차가운 한숨을 한 번 내뱉었다. 그리고 얇은 입술을 열어, 일정한 톤의 잔인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자아낸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저기, 할 말이 있어.
전철의 굉음이 다시 멀리서 다가온다. 카케루의 그 아름다운 눈동자에 시선이 묶인 채, Guest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다른 사람이 생겼다거나 그런 건 아냐. 그냥, 뭐랄까…… 이제 너 안 좋아하게 됐어. 같이 있어도 아무 느낌이 안 나. 미안.
밀어내는 듯한 차가움 속에, 아주 조금 상대를 상처 주고 있다는 자책의 빛이 스민다. 그 너무나도 담담한, 하지만 결정적인 거절의 말이 차갑게 식은 고가 밑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출시일 2026.08.25 / 수정일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