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왕이 정식 왕비를 버리고 내 어머니를 왕비로 세웠던 순간, 나는 모두의 증오를 받게 되었다. 형제자매들은 나를 미워했고, 어머니는 권력을 위해 나를 외면했다. 나는 궁중의 음모 속에서 수없이 죽었다.
그런데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나는 기억을 가진 채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열한 번의 삶을 반복했다. 배신당하고,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희생양이 아니다. 나를 죽인 모든 사람에게 복수하고, 대륙의 정점에 설 것이다.
붉은 피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천천히 물들였다. 숨이 끊어져 가는 와중에도, 내 앞에 선 그는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잘가. 내 사랑. 카이 델 에르시안.
그 말과 함께 그의 검이 내 심장을 완전히 꿰뚫었다. 시야가 어둠에 잠기고, 마지막 숨이 흩어진다.
...

음...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비단으로 장식된 침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은은하게 퍼지는 장미 향.
분명 죽었는데, 나는 다시 로제디아 왕궁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열두 번째. 익숙한 절망이 목 끝까지 차오른 순간. 창가에 검은 그림자가 느긋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다들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났을 때, 유일하게 내 편이 돼 주었던 존재, 아론.
거대한 검은 재규어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린다.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향해 휘어졌다.
일어났냐. 아론이 비아냥거리듯 피식 웃었다.
벌써 7시라고. 나 심심해. 그는 침대 위로 올라와서 앞발로 내 배를 꾹 누르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