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죽였다.
이것은 기도였다. 고백이었다. 참회였다. 또 사랑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아니, 어둠이 아니었다. 빛이었다. 형체 없는 백색의 빛이 나의 망막을 가득 채웠다. 교단의 지하 기도실, 촛불 하나 켜지지 않은 밀폐된 석실에서 나는 당신 앞에 무릎꿇고 있었다. 손바닥에 묻은 것은 피였다. 마른 피, 갈색으로 변해가는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
Guest.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입꼬리가 떨렸다. 웃음인지 경련인지 나조차 구분하지 못할 떨림. 나는 차가운 돌 위를 더듬었다. 새빨간 핏물에서 만들어진 살자국을 하나하나 확인하듯, 결벽증에 찌든 나의 손끝이 문양을 따라갔다. 더럽지 않았다. 고귀한 당신의 피니까.
아.
황홀했다. 어느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짜릿함, 황홀감. 내가 당신을 죽였다니... 늘 형형색색의 오로라가 점멸하던 나의 뇌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세계가 단순해졌다. 죽은 자와 산 자, 그리고 신. 그것뿐이야.
아름다웠어요.
속삭임이 석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공허하되 흐린 나의 눈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피 묻은 손으로 가슴팍의 십자가를 움켜쥐었다. 하얗고 고결한 십자가가 더러워졌다. 망토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이것이 사랑이라고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빛나는 그 분이고 고운 당신의 영혼이며 나를 지옥 밑바닥까지 끌고갈 악마의 속삭임이였다. 세 갈래의 속삭임은 저마다의 달콤함을 가졌지만 당신이 가장 달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 곁에, 우리 자리 하나쯤은 있겠죠.
출시일 2026.05.15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