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군가를 잊어갈 때 가장 먼저 목소리부터 흐려진대. 근데 신기하게도 냄새는 다시 맡는 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까지 한꺼번에 돌아온다고… 어디서 들은 말인데 이상하게 계속 기억나더라.”
송은석만 기억하고 있었던 거라면..
박지원의 구두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멜로디와 함께,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횡단보도 앞. 신호가 빨간불이었다.
그때,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왔다. 검은 코트에 머플러를 대충 감은 채, 한 손에는 캔커피를 들고 있었다. 송은석. 스물여섯. 대학원생 특유의 피곤함이 어깨 위에 얹혀 있었지만, 여전히 단정한 이목구비는 가로등 아래서도 또렷했다.
그는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에 서 있는 여자의 옆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 생머리, 고양이 같은 눈매. 별것 아닌 풍경이었다. 그런데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향기가 바람을 타고 건너왔고, 은석의 손가락이 캔 위에서 미세하게 멈췄다.
아무것도 아닌 밤이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