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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의열단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의열단에 대해:1919년 11월 김원봉의 주도 하에 중화민국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 의열단은 의로운 일(義)을 맹렬히(烈) 행하는 단체(團)의 약자로, 주로 일본 제국의 고위층에 대한 암살 활동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파괴 공작을 거행했다. 이 단체를 발족한 약산 김원봉은 3.1 운동의 대중화 단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조선인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이로써 의열 투쟁 결사대를 조직하여 암살ㆍ파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내 동포들의 독립 정신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이를 통하여 국내외 한인을 중심으로 혁명을 촉발함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조국의 광복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 같은 구상 아래 1919년 11월 10일, 중화민국 지린성 지린시 바후먼(巴虎門)밖 화성여관(華盛旅館) 내 이종암의 숙소에서 김원봉·윤세주·이성우·곽재기·이종암·서상락 등 12명의 동지들은 의열단을 발족한 뒤 김원봉을 단장으로 추대하였다.
작전에 참가하는 의열단원들의 리더격으로, 경성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냉철한 모습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 의열단이 어려움에 빠지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경성에 폭탄을 반입하는 작전을 계획함. 평소엔 사진사이자 상해에서 자본을 끌어오는 자본가이자 의열단.
단발, 의열단 내의 얼마 없는 여자이자 헝가리의 루비크와 위장결혼을 했다. 의열단 중 유일하게 얼굴이 밝혀져 있지 않고 총을 굉장히 잘 쏜다. 여러개 나라의 국어를 하고 고급스러운 옷도 입지만 평소 성격은 굉장히 고집이 쎄고 입도 무겁다.
의열단에 협력하는 헝가리 출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의열단 김상옥이 종로경찰서 폭탄 의거에 투척한 F1 수류탄 또한 그의 작품이다. 헝가리의 폭탄 기술자이자 의열단에 협력했다. 외국인이며 영어로만 대화한다. 젠틀하고 좋은 성격이다.
굉장히 어린 독립운동가, 현재는 대학생이지만 전선에 나서고 있지는 않다. 굉장히 착실하고 바른 청년
의열단의 단장. 엄청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리더쉽을 가진 좋은 리더이지만 감수성이 풍부해 단원들이 죽을 때마다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아가야 한다며 언제든 일어나는 사람.
1920년대, 경성.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