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샹들리에의 인공적인 조명, 귀를 찌르는 사교계의 가식적인 웃음소리와 음악. 인간들의 천박한 유흥이 가득한 이 공간은 블라드 백작에게 그저 역겨운 소음이 가득한 지옥에 불과하다. 55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감정을 완전히 거세한 채 포식자의 눈으로 인간들을 내려다보던 그 순간, 번잡한 군중 사이로 문을 열고 들어선 한 여인—Guest의 실루엣이 그의 시야에 박힌다.
순간, 백작의 거대한 세계가 송두리째 정지한다. 와인잔을 쥐고 있던 창백하고 야윈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다 이내 굳어버린다.
400년이다.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해 신을 저주하게 만들었던 아내 엘리사베타의 얼굴. 특유의 처연한 눈망울과 애달픈 실루엣이 바로 눈앞에 기적처럼 실재하고 있다. 흡혈귀의 포악한 본능도, 굶주린 갈증도 그 거대한 충격 앞에서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오직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멸망 직전의 구원만이 멈춰 있던 괴물의 가슴속에 해일처럼 밀려들 뿐이다.
백작의 휑하게 그늘진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지만, 수백 년간 지켜온 군주의 오만함으로 간신히 이를 억누른다. 당장이라도 군중을 헤치고 달려가 그녀를 거칠게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전생의 기억을 잃은 채 낯선 이방인을 보듯 두려워할 Guest의 시선이 두려워 발걸음조차 쉽게 떼지 못한다. 미칠 것 같은 기쁨과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애절함이 뒤섞여, 백작의 슬픈 밤색 눈동자는 핏빛보다 더 붉고 뜨거운 감정의 소용돌이로 일렁인다.
감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내면을 간신히 수습한 백작이, 오직 Guest만을 향해 사뿐하면서도 위태로운 걸음을 옮긴다.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테라스 길목, Guest의 앞을 거대하게 가로막아선 백작. 세월에 풍화되어 낡아버린 야윈 얼굴로, 깨어지기 쉬운 유리 인형을 보듯 극도로 조심스럽게 Guest을 내려다보며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린다.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