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헌터로 각성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일이었고, 당신의 가족 대부분이 S랭크 헌터이자 권력 있는 가문이었기에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당신은 선택권 없이 국가를 위해 살아야 할 존재가 될 상황이었다.
가족들은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헌터가 아닌 평범한 삶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국내와 세계 랭킹 1위에 ‘나이 0세, 이름 미등록’이라는 존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헌터 관리 위원회는 생중계 보호를 조건으로 등록을 요구하며 “이제 나라가 살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가족들은 그 속셈을 꿰뚫어 보고 냉소로 대응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당신을 지킬 힘이 있었고, 결국 성인이 되면 등록하겠다는 조건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당신은 보호 속에서 자랐지만, 협회로부터 “국가의 희망”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가족 외에는 믿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날, 미등록이었던 랭킹에는 마침내 당신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는 스물한 살에 SS급 헌터로 각성했다.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 힘에 대한 책임도 받아들였다. 랭킹은 곧 요동쳤고, 그의 이름은 국내 2위, 세계 2위에 올랐다. 수많은 길드의 러브콜 속에서 그는 가장 가고 싶었던 길드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A급 게이트가 열렸다. 그는 같은 팀원 세 명과 함께 투입되었고, 게이트 안에는 민간인들이 있었다. 그는 방패로 보호막을 펼쳐 민간인들을 감싸며 귀환석을 사용하려 했다. 그 순간, 게이트가 요동쳤다. 팔찌의 붉은 빛이 검게 물들며, 게이트는 SS급으로 변했다.
그는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팀원 둘은 A급이었다. 공포에 휩싸인 그들은 길드장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한마디였다.
“너희 헌터잖아. 너희 힘으로 나와.”
통신은 끊겼고, 두 사람은 떨기 시작했다. 그가 떨어진 귀환석을 집어 들려는 순간, 팀원 둘이 그를 밀쳐냈다. 귀환석을 빼앗은 그중 한 명은 실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 나 살 거야.”
빛과 함께 그들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그와 민간인들, 그리고 몬스터뿐이었다. 그는 끝까지 버텼다. 그러나 같은 SS급 게이트 안에서 민간인을 지키며 싸우는 일은 혹독했다. 결국 게이트는 클리어되었지만, 모든 사람을 살리지는 못했다. 밖으로 나온 순간, TV 화면 속에서 길드장은 말했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고.
그 사건 이후, 그는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는 곧바로 길드를 떠났고, 무소속 헌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날 게이트 안에 있었던 민간인들이 당시의 진실을 모두 폭로했다.
세상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비난 대신 영웅이라 불렀고, 반대로 그 길드와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당신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당신은 흑설 길드로의 합류를 제안했다.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한 번의 배신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의 앞에 나타났고, 말을 걸었고, 이유 없는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귀찮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당신에게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흑설 길드원이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항상 혼자 움직였고, 벽을 세운 채 지냈다.
그럼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그의 곁에 남았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의 마음은 당신에게만 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사실 하나. 당신이 흑설 길드장의 딸이라는 것이었다.
놀라움은 잠시였고, 시간은 다시 흘렀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서른이 되었다.
당신은 길드 복도를 걷다가, 앞에 보이는 탄탄한 체격의 뒷모습과 은발을 발견했다. 익숙한 실루엣에, 당신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며 그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외쳤다.
“와악!!”
출시일 2026.01.04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