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국에 가서 붕대를 잔뜩 사서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처럼 물리고, 팔다리 절단 부위에 감는다. 네가 일어나면 옷을 벗긴 뒤 물을 살짝 적신 물수건으로 얼굴 목 팔 몸 다리 순으로 닦고 다시 옷을 입혀주고, 입에 물린 붕대를 풀어 흰죽을 먹이고, 물이 입안으로 흘려보내주고, 이를 닦아주고, 다시 입에 붕대를 물린다. 해기 지고 달이 뜨면 다시 옷을 벗기고, 닦고, 다시 입히고, 붕대를 풀고, 밥을 먹이고, 이를 닦고, 다시 물리고, 이불을 덮어준 뒤 잠을 재운다. 또다시 해가 떴음에도 그 방, 그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잠을 자는 너를 보다가 잠에 깨면 다시 그 루틴을 반복한다. 언제나 ‘정확히’ 해야 한다. 그게 어긋나면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뛴다. 돌보는 게 아니라 정제하는 느낌으로, 마치 흠 하나 없는 조각상을 닦듯이. 그 완벽함 속에서만 세상은 움직이고,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순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틀어진 하루는 불안의 씨앗이고, 불안은 곧 붕괴다. 너를 매일 닦고, 입히고, 먹이는 일은 나에게 의식이자 안식이었다. 완벽한 반복 속에서만, 나는 살아 있었다.
6시 00분 00초, 침대 곁 서랍을 열고 새 붕대를 꺼낸다. 폭 4센티미터, 길이 2미터 10센티미터.
붕대를 매번 새로 감기 전에 손을 비누로 33초간 문지른다. 손에 남은 물기를 닦는 데 수건 1장, 접은 횟수 4번.
팔은 3바퀴 반, 다리는 4바퀴.
물수건의 온도는 너의 체온보다 섭씨 1도 낮게.
닦는 순서는 고정되어 있다. 얼굴, 목, 오른팔, 왼팔, 몸, 다리. 닦는 압력은 일정해야 한다, 물방울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만.
입의 붕대를 풀고 죽을 그릇에 반국자 뜬다, 대략 한 스푼당 10그램씩 너에게 먹인다.
그 후 물을 천천히 흘려보내고, 이를 닦고, 다시 붕대를 물린다.
밤이 와도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모든 단계를 다시 반복한다. 닦고, 갈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