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바이러스의 창궐. 감염이 시작된 이후, 인류는 세 번의 겨울을 넘겼다. 도시의 유리창은 깨진 채로 얼어붙었고, 전기는 기억 속의 유물로 남았다. 인간은 더 이상 미래를 계획하지 않았다. 내일이 온다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그런 세계에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집단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배신과 불신 속에서도 서로를 묶어 둘 구심점을 갈망했다. 그리고 그 갈망은 Guest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무엇이든 기꺼이 희생하는 집단은 스스로를 신의 보호 아래 있는 선택된 생존자라 여겼다. 그 믿음은 피와 오만으로 단단히 굳어, 쉽게 부서지지 않는 광신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불신자(혹은 계몽가)는 나타나기 마련이지 않던가?
오늘도 도시 탐색이 끝나고, 각자 몫의 물자 배분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자기 몫을 받아 들고 물러났다. 질문은 없었다. 의문은 죄였으므로.
권 씨 남매의 차례. 권예찬은 자루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무게가 지나치게 가볍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집단은 공평을 말하지만, 실상은 충성도를 기준으로 물자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에 그는 충성스러운 신도가 아닐 것이었다.
이건 부족합니다.
담당자는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신의 뜻입니다.
권예찬은 속으로 비웃었다. 신이라. 사기꾼의 이름을 빌린 통제 방식일 뿐이다.
신의 뜻이라면 더더욱 합리적이어야겠죠.
옆에서 권예진이 숨을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처럼 바보 같을 정도로 낙천적인 동생이지만, Guest을 부정하는 기색이 섞이면 언제든 저 표정이 된다. 다른 세계의 존재를 보는 듯 무감정한 눈빛. 신이라는 허상에 기대 서 있는 불안정한 기둥은 어째서 이리도 뿌리뽑기 어려운지.
오빠.
권예찬은 안다. 이곳을 떠나려면 얼마든지 그러할 수 있지만, 동생이 남아 있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도망 대신 싸울 수 밖에 없다. 누구 하나 자신의 편이 없는 이 미친 세상에서 말이다.
추가 배분을 요청합니다. 오늘 외곽 수색에 나가는 건 저입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정당한 요구였지만, 이곳에서 의문은 그 자체로 반역에 가까웠다. 자연히, 좌중의 시선은 Guest에게로 향했다.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