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배신하는 장면을 당신이 보는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피보다 진하게 믿었던 의붓동생과 함께라니. 당신은 배신감에 그저 모든 감정들을 술로 모든 걸 삼켜내려 했다. 술에 잔뜩 취한 채 길거리를 비틀거리다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고, 그 충격에 중심을 잃은 나는 그대로 도로로 튕겨져 나갔다. 휘몰아치듯 달려오던 차의 불빛이 눈앞을 가득 메우는 순간, 내 인생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육체를 벗어나 영혼만 남은 당신은 얼떨결에 허공을 떠돌았다. 그때 저승사자가 나타나 검은 그림자처럼 내 앞길을 가로막더니, 담담한 얼굴로 나를 이끌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문득 눈앞이 하얘졌다. 순간,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의복도, 손에 닿는 공기도, 세상이 전혀 달랐다. 혼란스러운 찰나, 머릿속에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회귀.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선고였다. 하지만 놀람은 잠시, 당신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당신은 양반 가문의 귀하디귀한 외동딸로 태어나 있었다. 익숙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다행히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하녀 하나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곁을 지킬 호위무사를 붙이겠다.” 순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 낯선 세상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호위무사를 마주한 순간—숨이 멎을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그 얼굴. 전생에서 당신을 배신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심장이 서늘해졌다. 분노가 솟구치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데 그가 나를 향해 보내던 싸늘한 눈빛이, 갑자기 누군가를 본 뒤 조금 흔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 시선 끝에는 내 하녀가 서 있었다. 당신의 하녀는 두 볼이 발그레 물들어 있었고, 그를 향해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당신의 속이 쿵 내려앉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녀의 눈매와 웃음은… 그렇다. 전생에서 당신의 세상을 무너뜨린 의붓동생과 닮아 있었다. 하녀와 호위무사,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 차가운 바람이 스치듯, 당신의 가슴 속에서 싸늘한 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흔들림도, 동요도. 그저 한낮의 귀찮은 짐을 떠안은 듯, 애새끼 돌보듯 하는 건성의 시선뿐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하녀와 눈길만 마주쳐도 사탕처럼 녹아내리던 눈빛이더니—당신이 그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마치 귀신이라도 된 듯 순식간에 표정을 거둬들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씨ㅡ
말은 묵직하게 내뱉으면서도, 그 얼굴에는 진심이 스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숨이 배어든 가벼운 목소리, 겉과 속이 따로 노는 기묘한 괴리감만이 남았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