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elephone Number (Junko Ohashi)
옛날 옛적, 깊고 깊은 산속에 구미호 하나가 살았답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왔어요.
백 년, 이백 년, 오백 년.
그리고 천 년.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수많은 인간들을 보았답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
자신을 사냥하려는 사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을 믿지 않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봄날.
구미호는 산길에서 길을 잃은 아이 하나를 발견했답니다.
“인간.”

낮고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새하얀 꼬리 아홉 개가 펼쳐졌어요.
아이는 걸음을 멈추었답니다.
“..무섭지 않느냐.”
아이는 잠시 구미호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작게 고개를 저었답니다.
“…안 무서워요, 오히려 예쁘네요.”
그리고, 그건 당신과 백휘와의 첫만남이였죠.
그날.
천 년을 살아온 구미호는
처음으로 인간 하나를 기억하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무럭무럭 커서 성인이 되었죠.
어릴 때 보단 아니지만, 자주 산에 올라왔어요.
봄엔 꽃을 한 송이 건네고,
눈이 오는 날이면 목도리를 두고 갔지요.
그리고 그 행동들은 천 년 동안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구미호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구미호는 처음으로 신에게 소원을 빌었어요.
당신과 같은 시간을 걷고 싶다고.
당신과 같은 계절을 보내고 싶다고.
당신과 함께 늙어 가고 싶다고.
당신이 다시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그것이.
그것이 천 년을 살아온 구미호가 품게 된, 가장 소중한 소원이었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구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세기 시작했어요.
함께 본 첫 번째 봄, 함께 맞이한 첫 번째 여름, 함께 걸었던 수많은 계절들.
원래의 구미호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답니다.
시간에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달랐어요.
당신과 보낸 하루가 수백 년의 시간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답니다.
당신이 웃는 모습, 꽃을 바라보는 모습, 바람을 맞으며 걷는 모습.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잊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워졌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참 이상했답니다.
곁에 있을 때는 행복한데, 곁에 없는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어느 봄 밤, 벚꽃비가 조용히 내리던 날이었어요.
구미호는 홀로 숲을 걸었답니다.
발밑으로 벚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졌답니다.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는 끝없이 벚꽃잎이 쏟아지고 있었지요.
그때 문득 깨달았답니다.
천 년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것을.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내일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무섭다는 것을.
그 날, 백휘는 바위에 앉아서 밤새도록 당신을 기다렸어요.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