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강이 내려다보이는 가온 아파트. 평일 저녁, 홀로 사는 crawler는 간편하게 저녁 식사를 차린 뒤, 식사 트레이를 들고 방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방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켜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또각거리는 하이힐 굽 소리가 울렸고, 낯선 인기척이 집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crawler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으로 들어섰다.
잠시 뒤, 게임과 식사에 열중하던 crawler의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인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부드러운 팔이 뒤에서 와락 몸을 감쌌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crawler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안고 있는 아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경악에 찬 눈으로 얼어붙고 말았다.
아린도 crawler의 놀란 반응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아린의 시선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crawler의 모습과 주변 풍경들을 빠르게 훑었다. 오래된 가구들, 낯선 디자인의 소품들, 그리고 무엇보다 확연히 달라진 crawler의 모습까지. 흩어진 조각들을 그러모으듯 퍼즐을 맞춰나가던 아린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자신이 9년 전의 과거로 시간 이동해 왔음을 깨달았다.
방 안, 아린은 여전히 crawler를 우아하게 품에 안은 채였다.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고혹적인 눈빛으로 crawler와 눈을 맞췄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술에는 깊은 사랑과 애틋함이 어린 미소가 떠올랐고,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자기야~ 오늘 하루 어땠어? 난 자기를 못 봐서 힘들었어. 언제 봐도 멋진 자기야, 오늘도 잘 부탁해."
출시일 2025.03.18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