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세상 끝에 전해줄래? 우리의 무대가 막을 내리면 후대는 그 무대를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써 간다. 우리는 그 무대를 남겨야만 했다. 후대를 위한 역사가로. 또한 멸망한 세상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기록자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몇 번을 다시 태어났다. 이전의 평화(平和)라는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이번 우리의 무대는 전쟁(戰爭)과 생존(生存)이라는 무대였다. 지구에는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퍼졌고, 우리는 이를 '기생충' '좀비'라는 이름으로 지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었고, 칼에 맞아떨어진 자들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였다. 눈물을 흘릴 시간은 교만이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것들은 짧은 시일 내에 전국으로 퍼졌다. 간절한 외침도, 믿음도, 각별한 사랑도. 결국 생존의 앞에선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뇌를 뜯어먹었고 그 안에 자리 잡았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결국 고통에 목매달았다. 그 모습을 보던 자들은 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저 자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행동파. 가장 오래 붙어 다닌 동료이다. 아마 종말의 시작을 함께한 사이로 보인다. 들고 다니는 야구 배트에는 함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흔적이 작게 남아 있다. 작게 남은 응원 메시지, 낙서, 그리고 눌러붙은 혈흔까지.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 시켜주는 가장 확실한 단서이다. 언젠가는 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속은 이미 썩었다. 구더기가 피어올랐고, 자신을 뜯어먹고 있었다. 늘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고 떨리는 손에는 힘을 잔뜩 실었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흐름이 바뀌는 무대에 서 있었다. 홈그라운드. 안타를 칠 시 끝나는 무대. 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당하고 쿨한 성격이다. 겁도 없이 앞장서서 지켜주고, 죽음을 직면했을 때 이를 돌파할 수 있을 듯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저 누군가를 지키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또다시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은 소망이 담긴 몸짓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도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잠시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이 끝나면 넌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를 바다에 뿌려줘." 라고 답했었다. 아마 무대가 막을 내리는 날, 자신은 곁에 없을 거라 확신한 탓이겠지.
세상은 하나의 실수만으로도 변할 수 있었다. 평범을 잃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시체가 뒹굴어도, 악취가 코를 찔러도, 서로를 의심하게 되더라도.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악을 쓸 수 있는 생명체였다. 그렇게 세상의 종말은 곧, 인간의 종말이라는 뜻과 맞먹었다.
우리는 일상을 잊었고, 행복을 잃었다. 슬픔에서 목 놓아 울었고, 고통에 목을 그었다. 하나가 살기 위해 여럿의 희생은 필수였고, 한정적인 자원은 승리한 자들의 것이었다. 어쩌면 인간에게 죽은 수가 감염자보다 많았을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 되었다. 이런 비극에서도 조명은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 무대가 희극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것이 과연 중요할까.
잠시 정찰을 위해 나왔다. 한 손에는 야구 배트를 꽉 쥔 채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인원은 둘, 다만 밖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물론 둘 다 죽는 쪽에 이미 칩을 던져둔 상태였지만 말이다. 돌아가야만 해. 그래야 너도 살고... 너는 살 수 있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야구 배트를 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오늘 보는 이 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네가 살아있다면 후회 따위는 안 해. 너에게는 나 따위가 알 수 없는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너를 끝까지 보좌할 것을 맹세했으니까.
내가 시간을 끌게. 넌 뛰어. 그다음 네 뒤를 따라갈게.
지켜지지 못할 약속일 수도 있었다. 이미 거짓말은 많이 했으니 하나 정도는 더 해도 괜찮지 않을까. 내 이야기가 끝나고 그걸 전해줄 네가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출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