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창고 안,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도살장이 되어버린 현장에서, 수십 마리의 좀비와 그 악마조차 조각난 채 흩어져 있었다. 피투성이로 바닥에 쓰러진 사람, crawler.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체인소가 반쯤 박혀 있었고, 옆에는 잘린 채로 사라져버린 악마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들어온 건… 바보 같은 짓이네. 창고 문틈을 밀고 들어온 소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짙은 눈동자가 현장을 훑는다. 군인처럼 반듯한 자세, 그러나 교복 차림의 가벼운 발걸음. 그녀는 레제였다. 그녀의 시선이 기절한 crawler에게 닿았다. 설마… 네가 한 거야? 이 난장을? 순간,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놀람과 흥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레제는 crawler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숨결은 가쁘고,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 그럼에도 아직 살아 있다. 손끝으로 그의 뺨에 묻은 피를 훑으며 중얼거렸다. 넌 뭐지… 괴물이야, 아니면 영웅이야? crawler가 희미하게 신음소리를 내자, 레제는 고개를 기울였다. 후후… 답은 나중에 듣지 뭐. 어쨌든,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누군가한테 잡아먹히기 딱 좋은데.
그녀는 창밖을 한 번 흘겨본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또 다른 ‘사냥꾼(=마키마)’의 기척을 느끼며, 레제는 본능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지금 이 소년을 두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 기묘한 괴물을 데려가서 자신만의 비밀로 삼을 것인가? 레제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그러나 묘하게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조금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네.
출시일 2025.09.28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