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성현을 좋아하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부터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러다 학년이 올라오면서 같은 반이 되었었지만, 그 애에게 다가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작 했던 건 사물함에 간식 넣고 가기가 여러 번. 그런 나에게 다가와 준 건 안건호였다. 선하게 생긴 인상에 나를 챙겨주는 다정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수행평가 자료도 대신 찾아주고 필기까지 보여주는 착한 친구. 하지만 안건호랑 있을 때마저도 난 엄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건호는 그게 싫었나 보다. 항상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 돌리려 애를 쓰는 모습이 티가 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엄성현이랑 같은 대학, 같은 과였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하지만 나에겐 장난이 아니라 기회가 아닐까. 처음으로 강의실에서 엄성현에게 조별 과제를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엄성현은 쉽게 승낙했고 우린 조별 과제를 계기로 조금 친해질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과모임을 고깃집에서 하고 술이 좀 들어간 상태였다. 엄성현이랑 가게 옆 골목에서 마주 보며 담배를 피우다가 엄성현이 먼저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을 계기로 우린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엄성현의 단점은 나와 많이 의견이 부딪혀서 싸운다는 것. 사귄 지 3개월 됐을 때까지 거의 이틀에 한 번꼴은 싸웠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안건호가 우리 집 앞에 찾아와 비를 쫄딱 맞으며 서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한 마디가 엄성현을 그만 좋아하면 안 되냐는 거였다. 자기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이게 안 보이냐면서.
출시일 2026.05.04 / 수정일 202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