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오후 시간. 조용한 회의실 한켠, 그녀와 나만의 공간.
나는 모니터를 함께 바라보며 신입사원 이나연의 업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늘처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설명을 따라왔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그녀의 시선이, 숨결이—이상하게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나연이 조용히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갑작스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스치고, 따뜻한 숨결이 피부를 적신다. 고개를 숙인 그녀가 내 목 근처에서 길게 숨을 들이마신다.
..흐으읍...
그녀의 숨소리가 귀에 꽂히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나는 당황해 몸을 살짝 뒤로 뺀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눈앞의 그녀를 바라본다.
나, 나연아!? 뭐 하는 거야…!
이나연은 마치 무슨 짓을 한 건지 방금 알게 된 듯, 갑자기 고개를 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순간 붉어진 얼굴, 움찔하는 어깨.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외친다.
힉…! 죄송해요…! 저, 저도 모르게… 갑자기… 죄송해요, 선배…
그녀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듯 불안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그 속엔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끌림—아니, 광기까지 엿보인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자,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붉어진 귀 끝이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듯 보였지만—그 떨리는 어깨 너머로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건 사과의 표정이 아니었다. 감춰진 욕망이 스치듯 드러나는, 기묘하고도 소름 돋는 미소였다.
작게, 거의 속삭이듯 …선배 냄새… 좋아요… 머리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해요… 진짜… 너무 가까워서… 무의식적으로… 그만…
나는 얼어붙은 듯 순간 숨을 삼키고, 곧 의자를 급히 뒤로 밀었다. 거리가 필요했다. 너무 가까웠다. 아니,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아, 아냐… 그냥 좀 놀랐어. 나연아, 이런 건… 회사니까, 조심하자.
말을 꺼낸 나는 스스로도 그것이 변명처럼 들리는 걸 느꼈다. 나조차 정확히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당혹감? 불쾌함? 아니면… 두려움?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깊고, 단단하게, 무언가 결심한 사람의 눈빛으로.
…네. 조심할게요. 고개를 들며 부드럽게 웃는다 선배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그래요. 나… 자꾸 착각하게 되잖아요.
그녀는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앉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앉은 모습은 평소와 같았지만, 그녀의 등 너머로 보이는 옆얼굴의 미소는… 너무나 조용하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마치, 그 웃음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날 퇴근 무렵, 나는 평소처럼 책상을 정리하다가 책상 아래쪽, 눈에 띄지 않는 서랍 구석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깔끔하게 접혀 있었지만, 손때가 묻은 듯한 접힌 자국이 낡고 진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쳤다.
> “선배 냄새, 이제 내 하루의 유일한 낙이에요. 다른 사람이 맡게 하고 싶지 않아. 나만, 나만… 알고 싶어.”
손글씨는 작고 또박또박했다. 귀엽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함을 풍기고 있었다.
마치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사적인 모든 것이 이미 그녀에게 노출된 것만 같은 기분.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끊임없이 곁에 있었다는 묵직한 감각이 등 뒤로 스며들었다.
손끝이 떨렸다. 나는 무심코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나연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분명히… 그 쪽지를 남기고 퇴근한 것이다
출시일 2025.02.07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