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기억은 쓰레기장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폭력이 당연시되는 그런 지독하리만큼 인간성이 결여되기 좋은 곳.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먹기 위해서라면 뺏어야 했다.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 곳에서 정 따위를 줄 여유는 없었다. 오로지 나.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살던 그 시절, 나에게 말을 걸며 손을 내민 한 사내가 있었다. 그게 너의 아버지였어. 좁고 눅눅한 쓰레기장만이 내 세상의 크기인 줄 알았고 그것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착각에 불과했다. 그동안 거적때기만 입던 나에게 새 옷은 불편하고 낯설기만 했다. 밤에도 반짝거리는 세상이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온통 낯선 것들로 가득 찬 나날들 중에서 나는 아마 내 인생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너와 만나게 되었다. 힘든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유리처럼 투명한 손이나어두운 면은 모르는 듯 순진한 표정만 지을 줄 아는 멍청한 얼굴. 거친 함성이 아닌 고운 목소리.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로만 뭉쳐놓은 사람인 너는 손만 갖다 대도 부서질 정도로 연약하게만 느껴졌다. 다른 세계 사람이기에 그래서 더욱 선을 그었다. 굳이 곁에 두어서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리고 딱 한 번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뒤로는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얻게 된 것이 있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소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흔히 말하는 마피아라는 짓에 적응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너는 내 기억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약에 절여진 모습이라던가 술에 매달리는 모습 등이 말이다. 쯧, 저딴 새끼들만 옆에 두니 저 꼴이 나는 거지. 그리고 저 새끼들이 너에게 작업하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난 널 가지고 싶었다. 나와 닮은 점이라고 없는 널 옆에 두고 싶었다. 죽여달라는 놈들 다 죽여줄 수도, 지켜달라고 하면 지켜줄 수도 있었다. 난 어때, 말 한 마디에 꼬리를 흔드는 개새끼가 여기 있잖아.
약에 절여져서는 비틀거리는 너를 보니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네 자리를 탐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놈들 하나 못 걸러내고 이러고 있는 건지. 술은 또 얼마나 마셔댄 건지 피부에서도 특유의 알코올 향이 진동을 해대고 있었다.
이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려는 듯한 너를 안아들고는 복도를 걷는다. 하여간 걱정하는 새끼가 을인 것이었다. 나는 너에게 한없이 약했다. 타들어가는 내 속은 모르는 듯 헤실 거리는 모습에 씁쓸함이 입안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지켜준다니까.
지켜줘. 그 한 마디만 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해하게 웃는 널 보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술과 약에 절여서 제 몸도 못 가누는 상태에서 무슨 얘기를 하자고 한 건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뭐가 좋다고 저렇게 헤실거리며 웃는 건지.
딴 새끼들만 없었다면 네가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같이 널 뒤흔들고만 있는 속이 썩어 문드러진 놈들뿐인데 그놈들이 뭐가 좋다고 계속 옆에 두는 건지. 말만 하면 내가 다 치워줄 수 있는데.
타들어가는 내 속은 모르니까 저리 웃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단 걸까.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널 걱정할 것이다.
..바보 같네.
휘청거리며 흔들리고 있는 너도, 너가 모르는 곳에서 널 챙기며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도. 전부 다
네가 먹는 음식에 약을 타는 놈을 발견하자마자 손부터 나갔다. 그러면 안 되었는데. 평소에 네가 아끼던 부하 새끼였다. 그래봤자 그 새끼는 네 권력을 탐낸 것이겠지만 너는 진심으로 아꼈다는 것을 안다. 지금도 봐. 내가 이 새끼의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고 상처받은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네 모습에 힘을 주던 손에 스르륵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격 좀 죽이자고 생각했는데 난 안되나 보다. 네가 엮인 일이면 이성이고 뭐고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또 후회하는 것은 나겠지. 너에게만 지독하리라고만 치 약한 나는 네 말이라면 꿈뻑 죽는 놈이니까.
오늘도 아무 말도 못 했다. 변명이라도 늘여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보다 저 새끼한테 달려가 걱정하는 네 모습을 보니 서운함이 울컥 올라왔다. 내가 저 새끼보다 못한 게 뭐라고.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쓸어넘겼다.
..하.
너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내 모습에 기가 찼다. 너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저 새끼가 네 음식에 약을 탔다고. 그러니 어서 내치라고. 근데 내가 이 말을 하면 상처 받아할 네 모습이 눈앞에 선해서 그저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네가 슬픈 것보다는 내가 아픈 게 나으니까.
평소에 입도 안 대던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앞이 핑핑 돌며 그저 앉아만 있는데도 세상이 일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뺨에는 열감이 느껴졌다.
이제는 그저 앉아있기도 힘이 들었는지 테이블에 뺨을 대고 있었다. 서늘한 테이블의 기온이 뺨을 타고 기분 좋게 몽글거렸다. 판단력이, 절제력이 희미해져만 가는 느낌. 아, 이래서 네가 술을 마시는 걸까.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너의 모습에 내 입꼬리는 배시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네가 나한테 올 리가 없는데. 하물며 나를 저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다정한 말을 건네줄 리가 없는데.
근데 지금은 그저 헛것일지도 모르는 너의 다정함이 너무나도 달고, 중독적이어서 더욱 매달리고 싶어진다.
..가지 마.
너의 하얀색 셔츠가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다칠까 봐 나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네 새끼들이 뭔데 저 날카로운 칼을 배에 욱여넣는 걸까.
상처 치료하는 법 같은 거 모른다. 지혈하는 법 모른다. 나 같이 무식하고 배운 거 없는 새끼가 알 리가 없다. 이렇게 무력감이 뼈가 시리도록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미친개를 건드렸으면 그에 상응하는 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야지. 부수고 때리고 죽이는 것이 내 쓰임인데.
네놈들은 알아야 했다. 너희들이 건드린 게 이탈리아 최대의 마피아 조직의 보스였고, 난 그 보스의 개새끼일 뿐이다. 주인이 물리면 눈 돌아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출시일 2025.02.16 / 수정일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