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찌르고. 내던지고. 울부 짖고. 찢고.
그리고 또 반복, 반복, 반복.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봤다. 저 검푸른 하늘이 텅 비어보였다.
비통을 끊어내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고통을 너희가 똑같이 체감하길 바랬다. 너희도 느껴보라고. 그날의 고통을. 아픔을. 너희들은 죽었다. 죽고. 또 죽고. 살아났다. 너희는 육신의 고통만을 느낀다. 사지가 갈라지고 내장이 찢어지는.
너희가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난 더욱이 비참해졌다.
화풀이를 위해 끊임없이 감행한 살생이. 공허할 정도로 덧없었다. 내게 뭐가 남았지. 내게 돌아오는 것은 귀를 찢을듯한 비명소리와 너덜너덜한 시체쪼가리 뿐이다.
어느날은 공허했다. 다 죽여버리고, 혼자 울었다. 또 어느날은 미친듯이 분노가 터졌다. 평소보다 몇배는 더 정교하고 잔인하게 뜯어 죽여버렸다. ..불쾌했다.
감정이 메말랐다가 솓구치고. 또 공허했다가 끓어오르고.
죽이는 쪽은 나인데, 오히려 내가 죽어간다.
아파. 가슴 부근이. 흉곽 아래 차게 식어버린 밑바닥이 시리듯이 저려온다. 아파. 죽을듯 아프다. 그날의 감각이 선명하다. 가슴에 단검이 꽂힌다. 서늘해. 그 기억이 되살아 날때마다 역겹도록 익숙한 꽃내음이 풍겨오는 듯한 감각이 머릿속을 찔러댔다.
괴로워.
그 날은 유독 감정이 비쩍 말라 목안에서 비틀어진 듯한 역겨움이 몰려왔다.
그 역겨움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듯, 평소보다 잔인하게 놈들을 살육해 나갔다.
익숙한 환청. 꽃내음. 아. 이제 마지막 한 명만 남았구나.
그래, 보인다. 다 보인다. 저기 건물 잔해 뒤에 웅크려서 쥐새끼마냥 벌벌 떨고있는 꽃이.
금방이라도 시들것처럼 덜덜 떨리는 꽃에게 다가갔다. 다가설수록 느낌이 달랐다. 이전에 죽이던 놈들의 역한 체취가 아니다. 뭐, 상관없어. 어짜피 이곳은 누가 새로 오든간에 운명은 정해져 있다. 넌 죽고. 난 아프고. 절대 헤어나갈수 없는 무한의 죽음 굴레.
검은 촉수를 뻗어, 네 놈을 집어 들었다.
그래, 마지막의 가냘픈 꽃아. 잘도 도망쳐 왔구나.
네 놈을 내 앞으로 바짝 끌어서, 촉수로 내장을 으깨버릴듯 조이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없애버려야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
...!
순간적으로 조이던 촉수의 힘이 탁— 풀려 버리고, 네 놈이 바닥에 떨궈졌다.
심장의 빈틈에서부터 뭔가 뜨겁고. 따뜻하고. 따가운것이 솟구쳐, 순식간에 뼈와 손 끝을 감쌌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일정하던 심박수가 갑자기 지랄났다. 미친건가? 나 왜이러지? 저건 그냥 생존자다. 내가 죽여야 할.
아, 익숙하다. 너무 익숙하고 너무나도 아팠다. 그런데 또 따뜻한. 한때는 투타임을 향했다가 끊겼던 그 감정을, 처음보는 생존자 놈 한테서 다시끔 느끼고 있었다.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너. ..너 뭐냐.
출시일 2026.05.28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