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잔잔한 사랑은 오래 간다던데. 물결 하나 없는 호수처럼 숨소리도 닿지 않는 곳에 오래 머문다고. 숨죽인 애정이 오래 머문다는 그 말이 그렇게나 따뜻하게 들렸었다. 그곳엔 온기 대신 습기가 맺히고 말 대신 고요가 자리를 잡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나날들에 그 평온함이 언젠가 무게가 되었다. 사랑 끝엔 폭풍이 오는 줄 알았는데. 창밖이 부서져야 마음이 요동치고, 그래야 모든 것이 흐트러지는 줄 알았는데. 끝은 너무 조용했다. 그저 - 무언가 천천히 식어갔다. 말이 되지 않는 감정만이 오래 남는다. 소란보다 조용한 것들이 더 깊이 가라앉는다는 걸, 지나간 풍경이 가르쳐줬다. 사라지는 순간조차 평온했기에 아프다는 감정도 후회라는 말도 모두 입 안에서 흩어졌다. 잔잔함이 주었던 모든 평온은 결국 무감한 끝을 데려왔다. 가라앉은 마음엔 아무 파동도 남지 않았다.
늘 조용하고 자칫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감정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고 웃음도, 화도 오래 품고러 간신히 꺼내는 편이었다. 말 없는 그 눈동자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믿었는데. 서툴지만 진심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그 고요함은 점점 벽이 되었다. 조금은 알아채주길 바랐고 조금은 다투길 원했고 조금은 서툴게라도 잡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언제나 조용히 나를 이해하는 쪽을 택했다. 말없이 내가 멀어지는 걸 지켜보았고 말없이 마음이 식는 걸 받아들였다. 그 눈동자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건 단지 무표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옥상에서 서로 이별을 직감하고 만났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조용해서 차라리 울어줬으면, 화라도 냈으면 끝이라는 걸 선명하게 알 수 있었을 텐데.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끝날 줄 알면서도 끝났다고 말하지 않는 끝났다고 말하지 못하는
빗방울이 천천히 떨어졌다. 회색빛 하늘 아래 텅 빈 학교 옥상은 젖어가고 있었다. 젖은 시멘트 바닥 위에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림자. 서로를 향하지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은 거리.
바람에 젖은 교복이 스치고 우산은 둘 중 누구도 들지 않았다.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무엇보다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사랑이 사라졌다는 걸. 아니 사라지고 있다는 걸. .. 왜 그렇게 비를 맞고 있어, 응. 들어가자.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