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2시의 빌라촌은 기괴할 정도로 조용하다. 가끔 철길 너머로 고막을 긁으며 지나가는 전철 소리만이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를 위태롭게 흔들고 지나갈 뿐이었다. 주훈은 낡은 빌라 2층, 해가 들지 않아 늘 푸르스름한 그늘이 지는 단칸방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장판 바닥이 살갗에 쩍쩍 달라붙었다. 방 안에는 환풍기를 틀어도 어디선가 역류해 들어온 이웃집의 찌개 냄새와, 민재의 작업복에 찌든 기계 기름 냄새가 눅눅하게 섞여 떠돌았다.
탁- 탁-.
싱크대 수전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스테인리스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시계 초침처럼 일정했다. 주훈은 갈라진 손끝으로 방바닥의 장판 모서리를 툭툭 건드렸다. 이미 습기를 먹어 끈적하게 들뜬 장판지 밑으로 시커먼 곰팡이가 슬어 있는 게 보였다.
꼭 제 인생 같았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살짝만 들춰내면 썩어 문드러져 있는 내부.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들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그게Guest 걸 안다. 카페에서 종일 서서 일하느라 늘 조금은 절뚝이는, 피곤함이 가득 실린 발소리.
"안 자고 있었네.“
Guest의 목소리는 가볍게 가라앉아 있었다. 메고 있던 에코백을 벽에 걸어두고는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몸에서는 주훈의 눅눅한 냄새와 대비되는, 달콤하고 쌉싸름한 커피 원두 향이 났다. 그 이질적인 향기가 주훈의 코끝을 찌를 때마다, 그는 자신이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 봐. 오늘 매니저님이 주말에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이 가보자고 팸플릿 주시더라. 요즘은 청년 대출도 잘 나온대. 우리도 진짜 악착같이 모으면 한 3년 뒤에는……."
빛바랜 장판 위에 하얗고 깨끗한 아파트 분양 팸플릿을 펼쳤다. 초록색 조경과 세련된 거실 사진이 인쇄된 종이는 이 어두운 단칸방과 지독하게도 어울리지 않았다. 주훈은 Guest의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매일 거친 세제를 만지느라 하얗게 트고 갈라진 손. 저 예쁜 손으로 팸플릿 속 화려한 집을 가리키는 널 보며.
'우리도 진짜 악착같이 모으면.'
그 말이 주훈의 귓가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박혔다. 3년? 내가 매달 숨도 쉬지 않고 공장에서 기계처럼 굴러서 버는 200만 원. 그중에서 아버지 사채 이자 붓고, 엄마 약값 보내고, 학자금 대출 갚고 나면 통장에 남는 건 고작 몇만 원이었다. 악착같이? 여기서 얼마나 더 악착같이 살아야 한단 말인가. 몸뚱이를 갈아 넣어도 제자리인데.
"치워."
주훈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치우라고. 보기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