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하늘은 멀쩡했다. 우산도 없었고, 휴대폰 배터리는 3퍼센트. 택시 앱은 계속 로딩만 돌았다. 비를 피해 잠깐 몸만 녹일 곳이 필요했다.
그때 골목 끝에서 낯선 저택이 보였다.
이 근처를 몇 번이나 지나쳤는데, 저런 건물은 본 적이 없었다. 오래된 철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쪽 현관엔 희미하게 불빛이 새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 같았다. 잠깐 비만 피하고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초인종을 누르려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대답은 없었다.
젖은 운동화 바닥이 대리석 위를 미끄럽게 스쳤다.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바깥에서 들리던 빗소리조차 두꺼운 벽에 막힌 듯 멀어졌다. 몸은 금방 식었고, 긴장이 풀리자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왔다. 젖은 옷, 차가운 공기, 희미한 조명. 몇 걸음 더 들어간 순간 시야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벽을 짚으려 했는데 손끝이 허공을 스쳤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현관이 아니라 저택 안쪽 낯선 방에 앉아 있었다. 젖은 겉옷은 벗겨져 있었고, 옆 탁자엔 마른 수건과 따뜻한 찻잔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분명 내게 손을 댔다. 그런데 인기척은 없었다.
문득, 문 쪽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